
독립신문을 통해서 본 개화기 조선의 평생교육에 대한 탐색: 독립신문 논설을 바탕으로
초록
독립신문은 경제·의료·위생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루며 실질적인 공중교육 기능을 수행했다. 국가 제도가 미비한 위생 규범을 스스로 제정·보급하고, 정부에 구체적이고 실현할 수 있는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등 실천적 역할을 했다. 특히 자주 독립국 건설의 핵심 조건으로 ‘인민 교육’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며, 인민의 무지를 깨우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능력을 길러 내부 화합과 외세에 대한 자각·저항 의식을 고취하고자 했다. 이러한 계몽의식은 미신 타파, 위생 개선, 여성 인권 향상, 법률 인식 강화 등 구체적 활동으로 나타났으며, 최초의 평생교육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로 인해 평생교육이 지향하는 알기 위한 학습을 실행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Abstract
The Independent Newspaper performed served an important educational function by addressing a wide range of fields, including economics, medicine, and hygiene. It played an active role in establishing and disseminating sanitary regulations in the absence of adequate national systems, and in proposing concrete and feasible policy alternatives to the government. It consistently emphasized “education” as a prerequisite for building an independent nation, seeking to awaken the people from ignorance, cultivate their capacity to distinguish right from wrong, and foster internal unity as well as a sense of awareness and resistance toward foreign powers. This enlightenment spirit manifested in specific activities such as the eradication of superstition, improvement of public hygiene, advancement of women’s rights, and enhancement of legal awareness, thereby establishing itself as the first form of lifelong education. Consequently, it laid the foundation for the practice of learning for the sake of knowing, which is the aim of lifelong education.
Keywords:
independent newspapers, lifelong education, people’s enlightenment, educational level in the age of bloom키워드:
독립신문, 평생교육, 인민계몽, 개화기 교육 수준Ⅰ. 서론
1. 연구의 필요성 및 목적
“배움”이란 단지 외재적 지식의 축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내면의 도덕성과 성품을 단련해 나가는 전인적 수양의 과정을 포괄하는 개념이다(이성엽, 2023). 즉, 배움은 외적 세계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동시에, 자아 내면의 성숙을 지향하는 통합적 활동이라 할 수 있다. 독립신문은 광복 이후 국가 주도로 시행된 최초의 평생교육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언론 매체를 넘어 대중 계몽과 주체 형성을 동시에 지향한 교육적 실천의 장으로서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고 본 저자는 보았다.
Lindeman은 성인 학습자는 자신의 삶과 학습이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사회 참여와 변화를 끌어내고자 하는 비판적 태도를 견지한다. 이러한 관점은 학습에 대한 주체적 자아 개념, 풍부한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의미 구성, 현재의 사회적 위치와 역할에 따른 학습 준비도, 그리고 실질적 문제 해결을 지향하는 학습 성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김한별, 2014).
독립신문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신문이라는 역사적 위상을 지닌 매체로서, 국어학, 교육학, 언론학, 사회학, 역사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지속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으며, 이에 기반한 다각적인 연구가 축적 되어왔다(허재영, 2014). 순 한글체로 간행된 최초의 민간 신문으로서 독립신문은 단지 보도 기능을 수행하는 언론을 넘어, 인민 계몽운동의 실천적 매개로 기능하였으며, 국문 띄어쓰기의 개념화와 실천을 선도함으로써 한글의 사회적 위상 제고와 인민적 자각의 확산에 이바지한 바가 크다(이병철, 2023; 장명학, 2004).
특히 독립신문은 창간 초기부터 제1면에 논설을 배치하는 편집 전략을 통해, 스트레이트 뉴스 중심의 단순 사실 보도에서 벗어나, 특정한 사상과 사회 개혁적 지향을 독자에게 명확히 전달하고자 하는 오피니언 중심 계몽 언론으로서의 성격을 분명히 하였다(공용배, 1996). 이 논설들은 정치, 경제, 사회, 법, 교육 등 제반 분야에 걸쳐 당대 조선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비판적으로 진단하고, 그에 대한 개혁적 대안을 제시하는 공적 담론의 장으로 작동하였다(최현우, 2021).
더 나아가 신문은 단순한 사실 전달을 넘어, 동시대 공중이 내면화해야 할 인식 구조를 능동적으로 기획하고 구성하는 강력한 담론 장치로 기능하며(우신영, 2016), 독립신문은 이러한 미디어적 구실을 함으로써 근대국가 형성과 근대적 주체의 동시적 산출을 추동하는 계몽 기획의 실천 장으로 자리매김하였다(김동식, 2001). 실제로 독립신문은 교육을 중심축으로 삼아 인사, 보건, 법률, 산업, 국방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회 구조의 근대화를 지향하는 논설을 지속적으로 생산하였고, 특히 전통문화에 대한 비판과 개혁을 통해 새로운 인민 주체의 형성을 시도하였다(최현우, 2021).
이러한 계몽 담론은 위생과 같은 일상적 주제에 이르기까지 확장되었다. 위생 실천에 대한 인식의 여부가 개인의 건강뿐만 아니라 도덕성과 생명력에 직결된다고 지적하였으며(김갑천, 1990), 독립신문이 위생을 문명국 진입의 핵심 기준으로 삼고, 위생 개념의 부재와 실천의 부족이 민중과 정부 양측 모두에게 만연해 있었다는 점을 날카롭게 비판했다고 분석한다(김소영, 2003). 이러한 관점에서 독립신문은 위생을 매개로 민중과 국가 모두를 향한 이중의 계몽 전략을 구사하며, 국가의 생존과 문명화를 연계시키는 상징적 기호로서 위생 담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이와 같이 독립신문은 계몽주의적 사명을 수행하는 매체로서 교육, 보건, 법률, 언어, 사회 제도 등 제반 영역에서 지식 확산과 주체 형성을 동시에 도모한 다기능적 장치로 작동하였다.
이에 본 연구는 독립신문이라는 언론 매체를 통해서 당시의 평생교육을 파악하고자 한다. 그리고 더불어 독립신문이 논설이라는 매체적 채널을 통해 학습자에게 의도된 교육적 함의를 체계적으로 규명하고, 그 구체적 내용을 심층 분석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독립신문이 당시의 교육적 교훈이 지금의 평생교육에 있어 어떠한 시사점을 제시하는지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2. 연구 문제
첫째, 독립신문이 논설을 통해 알리고자 했던 평생교육 내용은 어떤 것이 있는가?
둘째, 독립신문 논설에 평생교육 내용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Ⅱ. 이론적 배경
1. 독립신문의 발간 배경
독립신문은 1896년 4월 7일, 한성에서 창간된 조선 최초의 민간 한글 신문으로, 조선의 자주독립과 인민 계몽을 목표로 발간되었다(공용배, 1996; 이병철, 2023). 창간의 직접적 배경에는 1894년 갑오개혁 이후 일본의 내정 간섭이 심화하고, 1895년 명성황후시해사건으로 외세에 의한 국권 침탈이 가속화되는 정세가 있었다(최선, 2012).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서재필 또는 구성원들은 서구식 근대 정치사상과 시민 의식을 조선에 전파하고자 하였으며, 인민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근대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여론 형성을 위해 신문을 창간하였다(우신영, 2016).
독립신문의 창간 목적은 정치적 자주권 회복, 인민 계몽, 근대적 의식 함양, 그리고 언론의 자유 실현에 있었다. 신문은 한글을 중심으로 국한문 혼용 체제를 취하며, 다양한 계층의 독자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또한 미국식 입헌군주제, 삼권분립, 근대 법제도 등 서구 정치 체계를 소개하고, 과학·의학·산업 등 실용적 지식도 폭넓게 다루었다. 이를 통해 조선 민중의 지적 수준을 향상하고, 국가의 독립과 번영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창간은 서재필 개인의 주도로 이루어졌으나, 일부 미국 선교사들의 지원과 협력도 있었으며, 이후 1896년 말 설립되는 독립협회와의 연계 속에서 신문의 영향력은 더욱 확대되었다. 신문은 독자의 참여를 독려하며 투고란을 운영하였고, 정부와 지식인뿐만 아니라 일반 민중과도 소통하는 창구로 기능하였으며, 결과적으로 독립신문의 발간은 근대 조선에서 언론과 공론장의 형성, 시민 사회의 태동, 민족 자각과 독립 의식 고취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근대적 언론의 출발점으로 평가받는다.
독립신문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언론기관으로서 단순히 언론 정보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기능에 머무르지 않고, 오히려 모순되고 정립되지 않은 당대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적 개입을 통해 인민 계몽과 사회개혁을 지향하는 새로운 근대적 공론의 장을 창출하였다(장명학, 2004). 창간 당시 독립신문은 순한글 지면 3면과 영문 지면 1면을 결합한 이중 언어 체제로 편집·발행되었으며, 간행 주기는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의 주 3회 격일 발행이었다. 그러나 1897년 1월부터는 한글판과 영문판을 분리하여, 한글 독립신문과 영문 “The Independent”라는 두 개의 독립된 간행물 체제로 전환하는 발행 방식을 추진하였다(이병철, 2015).
독립신문의 논설은 전통적 질서와 전근대적 사고방식의 구조적 모순을 통렬히 비판하는 동시에, 근대적 이성과 합리성에 기반한 세계관의 사회적 정착을 지향하였다(장명학, 2004). 독립신문은 창간 당시 300부의 초판 발행으로 시작하였으나, 1898년 1월경에는 약 1,500부로, 같은 해 7월에는 3,000부에 이르는 등 점진적인 확산세를 보였다. 특히 학교, 시장, 관공서 등지에서 다수가 회람할 정도로 대중적 파급력과 사회적 영향력을 지닌 매체로 자리매김하였다(장명학, 2004).
2. 선행 연구
독립신문 논설에 관한 본격적인 탐구에 앞서, 해당 논설들이 어떠한 평생교육적 함의를 내포하고 있는지를 규명하고자 선행 연구를 수행하였다. 특히 국민 계몽의 관점에서 어떠한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발현되고 있는지를 분석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기존의 독립신문 논설 관련 연구들 가운데 교육적 함의가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지점을 중심으로, 선별적으로 고찰하였다.
그 결과, 독립신문 논설은 국민 계몽적 측면을 비롯하여 언론학적 기능, 지식 전달의 매개 역할, 의학적 계몽 담론, 법률에 대한 민중 교육, 서구 근대 문명에 대한 개화 담론, 그리고 정치 참여의식 고취 등 다양한 범주에서 교육학적 함의를 포함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본 선행 연구는 이러한 영역별 담론을 기반으로 독립신문 논설이 평생학습의 초기 형태로서 어떠한 역할을 수행하였는지를 조명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독립신문이 발간된 시기의 한국 사회적 맥락을 고려할 때, 이 신문은 단순한 계몽 활동의 수단을 넘어서 근대 지식의 유통과 확산을 담당하는 주요한 매개체로 기능하였다(허재영, 2014). 신문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서는 독립신문이 단순한 사실 보도에 그치지 않고, 비판성, 계몽성, 사회 교육적 기능을 포괄하는 복합적 매체로 작동했음을 강조한다. 이러한 언론관은 당시 사회 전반의 근대화를 촉진하는 담론적 장으로서 신문의 위상을 부각하게 시킨다(허재영, 2014). 독립신문이 지면 전면에 논설을 게재함으로써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인민 계몽과 여론 형성을 지향했음을 보여주며, 이는 당시 편집진이 논설에 대단히 높은 비중을 두었음을 방증한다고 하였다(공용배, 1996; 신용하, 2006). 독립신문이 근대적 인민국가 절대군주제하에서 수동적 통치 대상에 불과했던 백성들을 정치 공동체의 구성원이자 주권의 담지자로 전환하는 정치적·철학적 함의를 지닌다. 건설을 위한 다층적 담론을 형성하고 이를 계몽적으로 전파한 언론으로 평가하였다(장명학, 2004). 그리고 독립신문은 독립협회와 활동의 궤를 함께하며 그 이념적 기반과 실천적 방향을 공유하였다. 개화파 관료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독립협회는 초기에는 독립문, 독립공원, 독립관의 건립에 주력하였으며, 1897년 8월부터는 토론회를 중심으로 인민 계몽운동을 본격화하였다(공용배, 1996). 이어 1898년에는 전면적인 개혁운동과 함께 의회 설립 운동을 전개하였다(신용하, 2006).
독립신문이 교육 담론을 통해 근대국가 형성의 기초를 마련하고자 했던 계몽적 기획에 주목하였다. 독립신문은 여성 교육을 비롯해 화학을 중심으로 한 자연과학, 역사학, 정치학 등 다양한 근대 학문의 진흥을 강조하며, 특히 교육이 사회적 장점은 확장하고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시각을 견지하였다(최현우, 2021). 이러한 교육론은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애국심을 함양하고 민족적 단결을 실현할 수 있는 주체적 인민을 양성하려는 목적과 긴밀히 연결된다. 특히 직업에 대한 인식과 관련하여, 독립신문은 단지 육체노동에 종사한다는 이유만으로 개인을 천시하는 태도를 비판하며, 학문과 지식의 결핍을 질타하는 태도는 일정 부분 이해될 수 있으나, 생산 활동과 상업을 천대시하는 당시 식자층의 의식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였다. 나아가 각자가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에 성실히 임하는 것이 진정한 직업관임을 강조하였다(최현우, 2021).
또한 독립신문은 학교 설립의 필요성을 넘어서 전국적인 도서관의 설치 필요성을 제기하며, 이를 통해 지식 접근성과 평등한 교육 기회의 확대를 도모하였다. 특히 여성 교육의 중요성은 반복적으로 강조되었는데, 이는 미국과 같은 선진국 사례를 인용하면서 여성들이 교사 등 공적 영역에서 주체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반하여 정당화되었다. 결국 독립신문의 교육 담론은 단순한 이상적 제언을 넘어, 국가의 부강을 실현하기 위해 인민이 갖추어야 할 자질과 한국 사회가 개혁해야 할 구체적 과제들을 적극적으로 제시함으로써, 당대 독자들의 가치관 형성에 실질적 영향을 미친 계몽적 언론의 전형으로 기능하였다(최현우, 2021).
독립신문의 특기할 점은 교육의 대상이 남성에 한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독립신문은 여성 역시 동등한 교육의 주체로 간주하였으며, 축첩 관행과 여성 보호의 부재를 비판하면서 남녀 평등 실현을 위한 여성 교육의 필요성을 강하게 역설하였다. 이는 교육을 통해 성평등을 실현하고, 여성 또한 민족의 계몽과 국가의 진보에 이바지할 수 있는 능동적 주체로 재정의하려는 지향을 담고 있다(장명학, 2004). 또한 독립신문은 여성 교육에 관한 문제의식은 뚜렷하게 드러났다. 여성들이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함으로써 자신의 권리를 인식하거나 주장하지 못하는 현실이 지속되었고, 이는 곧 국가적 사안에 대한 여성의 인식 및 참여의 결여로 이어진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독립신문은 후세 교육의 중심이 여성임을 강조하면서, 여성학교 설립의 시급성과 여성 교육의 보편화를 지속적으로 촉구하였다고 하였다. 아울러 독립신문은 성인교육의 하나로 신문 읽기를 권장하며 대중 스스로 계몽과 지식 향유를 유도하였다(김영희, 2013).
또한 독립신문은 단순한 사실 보도 매체의 기능을 넘어서, 특정한 사상과 사회 개혁적 지향을 독자에게 적극적으로 전달하고자 한 오피니언 중심의 계몽 언론으로서의 성격을 분명히 드러내는 편집 전략으로 해석한다. 이는 곧 독립신문이 당대의 현실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독자와 사회 전반에 특정한 가치와 이념을 주입하려는 계몽적 실천의 하나로 이해될 수 있다. 특히 창간 초기에는 인민 계몽과 근대 의식의 확산을 핵심 과제로 설정하고, 자유·민권·법치·평등 등 근대적 가치에 대한 교육과 홍보를 주요 논설의 내용으로 삼았다. 이러한 점에서 독립신문은 전통적인 왕정 질서와 유교적 이념 체계를 비판적으로 해체하면서, 새로운 인민 주체의 형성과 근대국가 건설의 이념적 토대를 마련하려는 언론의 기획을 수행하였다(공용배, 1996).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독립신문의 논조가 일정 부분 변화하였고, 이를 통해 독립신문이 단순한 계몽 언론을 넘어, 점차 개화파 정치 세력의 정치적 입지 강화를 도모하는 준(準) 기관 지적 성격을 내포하게 되었음을 지적한다. 이러한 변화는 독립신문의 사설과 기사 내용이 개화파의 노선과 이해관계를 일정 부분 반영하는 방향으로 재구성되었음을 보여주며, 계몽 담론과 정치적 선전 간의 경계가 점차 희미해졌음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독립신문을 근대 언론의 이념적·정치적 이중성과 그 진화 과정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제시하며, 이를 통해 한국 언론사 초기의 사상적 지형과 매체의 기능을 통합적으로 조망한다(공용배, 1996).
개화기 신문, 특히 독립신문이 지식의 확산과 근대 인민 형성을 위한 핵심적 매체로 기능하였음을 강조하였다. 개화기 당시 신문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서, 지식을 사회적으로 유통하고 근대적 의식 형성을 촉진하는 주요 매개로 인식되었으며, 신문과 지식 간의 관계는 매우 밀접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우리나라 역시 문명개화를 통해 근대적 인민 국가로의 발전을 도모하고, 동시에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과 이권 침탈에 맞서 자주적 독립을 실현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가 강하게 제기되었음을 지적한다. 이러한 시대 인식 속에서 서구의 학문과 지식의 체득은 근대적 국가 형성의 필수 요건으로 제시되었으며, 독립신문은 바로 그 지식의 매개자이자 실천자로 자리하였다(김영희, 2013).
이 시기 ‘지식’은 더 이상 유교적 교양이나 경학적 소양과 같은 전통적 개념에 머무르지 않았으며, 국가 발전, 인민의 삶의 질 향상, 그리고 미래를 기획하는 데 이바지하는 실용적이고 목적 지향적인 서구 근대의 학문으로 재정의되었다. 독립신문은 전통적 지식 체계로부터의 과감한 탈피를 주장하며,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실용성과 효용성을 갖춘 지식만이 국가 존립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에 따라 독립신문은 교육을 지식 함양의 필수 조건으로 인식하고, 이를 조선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로 강조하였다. 전 계층의 인민이 학문을 익히고 지식을 갖추어야 외교적 존중을 확보하고 자주성을 유지할 수 있으며, 사·농·공·상 계층 간의 조화로운 성장이 가능하다는 견해를 견지하였다. 이러한 교육 중심주의는 세계사의 흐름과 국가 현실을 인식시키는 수단으로서의 인민 계몽과 교육의 시급성을 일관되게 역설하는 담론으로 이어졌다(김영희, 2013).
종교적 측면에서는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서구 종교의 수용이 국가 진보의 필수 조건이라는 인식을 강하게 드러낸다. 독립신문은 선교사를 ‘고마운 존재’로 묘사하며, 기독교의 본의를 ‘착하고 사랑하는 것’으로 규정하는 동시에, 기독교를 문명국의 종교로, 불교나 유교 등 비서구 종교를 미개국 또는 반 개국의 종교로 이분화하는 관점을 제시한다(허재영, 2014). 앎으로 인해 애국적 자긍심을 고취하는 역할도 충실하였다. 애국의 본질을 단순한 ‘충군(忠君)’에 국한하지 않고, ‘백성의 단합’과 ‘인민의 자각’으로 확장하고자 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곧 인민을 수동적 존재가 아닌 정치 공동체의 주체로 인식하려는 초기 민권 담론의 하나로 이해될 수 있다(허재영, 2014).
독립신문은 한의학이 체계적인 전문 교육 제도를 갖추지 못한 점을 근거로 비판하는 한편, 서양의학에 기반한 의학교육과 병원을 근대 보건 시책의 핵심으로 제시하였다(최현우, 2021). 독립신문이 조선 사회 내에서 의학이라는 학문 영역에 새로운 인식의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근대 의학 담론의 생산 및 유통의 주체로 기능하였다고 평가하였다. 그는 이러한 담론적 실천이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공중의 의식 구조를 근본적으로 계몽하는 데 이바지하였다고 보았다(우신영, 2016).
독립신문은 서양과 동양, 과학과 미신, 위생과 불결, 서양의학과 한의학, 병원과 의원, 소독된 메스와 소독되지 않은 침 등 이분법적 대립 항을 반복적으로 배치함으로써, 병원을 중심으로 한 근대적 의료 질서의 정당성을 구성해 나간다. 이러한 방식은 단지 의료 체계의 선진성과 과학성을 부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신체 담론을 통해 근대 주체 형성의 한 축을 제공한다. 특히 ‘자선’과 ‘기부’라는 키워드는 병원이라는 공간과 결합하여 반복적으로 언급되며, 병원이 공공선을 실현하는 제도적 장치로 기능해야 한다는 규범적 명제를 지속적으로 환기한다. 이는 병원의 역할을 단순한 치료의 장소가 아니라, 공동체 윤리와 계몽주의적 이상이 교차하는 장소로 위치 짓는 담론 전략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 독립신문은 서구 문명에 의해 치유되고 신체적 건강을 회복한 인민을, 건강한 민족국가의 구현을 상징하는 근대적 주체로 재구성한다. 이때 인민 개개인의 신체적 건전성은 단순한 생물학적 조건을 넘어, 국가 권능이 유기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물리적·제도적 기반으로 전환된다. 개인의 신체는 더 이상 사적 영역에 국한되지 않으며, 인민 국가의 통합성과 건강성을 담보하는 핵심 요소로 재편된다(우신영, 2016).
법률적으로는 당시의 법률이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 아래, 법률 개혁을 ‘개화→문명→서구’라는 진보의 도식 안에서 이해하고 있다. 이는 전근대적 법률 질서를 극복하고, 서구식 법치국가로의 이행을 촉진하려는 의지를 반영한다(허재영, 2014). 독립신문이 ‘법치’와 ‘법의 준수’를 일관되게 강조하였음을 분석하며, 특히 “인민의 재산 및 생명을 법률로 정해 준 권리(1898년 4월 28일)”라는 표현을 통해 인민의 기본권이 법률적 근거 위에 정립되어야 함을 명확히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법치주의적 지향은 단순한 법 복종의 요구를 넘어, 인민이 국가의 법적 주체로서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근대 시민 사회적 인식을 반영한다(최선, 2012). 더 나아가, 독립신문은 군주를 국가의 수반으로 인정하면서도, 그 권한은 헌법에 따라 명확히 규율되어야 한다는 입헌군주 제적 질서를 이상적 정치 체제로 지향하였다. 이러한 정체(政體)에 대한 인식은 실질적인 통치 권한이 군주 개인에게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헌법적 규범과 인민이 선출한 입법·행정 기관에 의해 행사되어야 한다는 원칙에 입각한다. 따라서 독립신문은 이러한 입헌적 원리에 기반하여 일상적 법치의 확립을 지속적으로 강조하였으며, 이를 통해 자의적 권력 행사가 배제된 근대적 법치국가로의 이행, 나아가 자주적 근대국가 건설의 제도적 기반 마련을 도모하고자 하였다(최선, 2012).
법치주의 확립 또한 독립신문 논설의 중심 기조 중 하나였다. 법 앞의 만민 평등과 공정한 법 집행, 그리고 탈세·세금 착복 금지 등은 법률 개혁을 통한 근대적 국가 운영의 이상으로 제시되었으며, 인민이 이를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계몽이 시도되었다. 이를 통해 독립신문이 근대국가 제도의 이념과 구조를 대중에게 내면화시키는 언론으로서 기능을 수행했다고 평가한다. 독립신문 사설의 핵심 개혁 과제는 다음 일곱 가지로 요약된다.
① 축첩 폐지와 남녀 평등, ② 반상 차별 철폐와 평등한 인민 공동체 지향, ③ 고리대금업 폐지, ④ 조혼 풍습 지양과 근대적 혼인 제도의 장려, ⑤ 신분 고하를 불문한 보편적 납세 체계 확립, ⑥ 법 앞의 평등과 공정한 사법 집행, ⑦ 탈세 및 세금 유용 금지. 이러한 과제들은 조선 사회에 만연한 전근대적 폐습에 대한 비판적 성찰로부터 도출된 것으로,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계몽의 실천이 독립신문 논설의 기조를 이루었다(장명학, 2004).
독립신문은 서구 중심주의적 시각과 서구 사상의 일방적 추종이라는 한계를 내포하고 있으며, 문명개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서구 문명을 비판 없이 수용해야 한다는 전제 위에 그 담론을 구성하고 있다고 분석하였다(허재영, 2014). 동양이 서양에 비해 근대화에 뒤처지게 된 원인을 학문 체계의 차이에서 찾고 있다. 동양의 학문이 주로 이론 중심의 형이상학적 담론에 머무르며 실용성과 현실 적용 가능성 면에서 한계를 드러내 내지만, 서양의 학문은 실증성과 효율성을 중심으로 구성된 실천적 지식체계로 인식되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인식을 전제로 독립신문은 동양 학문을 철학적 사유나 정신적 전통의 산물로 이해하기보다는, 근대적 기준에 따라 실용성과 응용 가능성의 관점에서 재평가하였다. 그 결과, 서양 학문은 과학기술·의학·법률 등의 영역에서 실제적 효능을 입증한 체계로 간주하며, 동양의 전통적 학문은 점차 ‘개화의 장애물’ 혹은 ‘극복의 대상’으로 규정되는 경향을 드러낸다. 따라서 독립신문은 서구 학문을 단순히 외래 지식으로 수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근대 인민 국가를 구성하는 핵심 인프라로 전제하면서, 지식의 위계와 학문의 방향성을 사실상 서구 중심주의적 담론 틀 속에 재배치하고자 하였다. 이는 곧 학문의 실용성과 국가 발전의 연결을 전제로 한 계몽주의적 서사 속에서, 동양 학문의 권위를 상대화하는 지적 태도라 할 수 있다(우신영, 2016). 독립신문이 학교 설립을 통한 교육 확산을 핵심 과제로 제시하며, 한문 중심의 전통 교육보다 서구적 실용 교육의 도입이 더욱 시급하고도 본질적인 과제임을 강조하였다고 지적한다. 교육은 단순한 지식 습득을 넘어, 인민의 자주성과 국가의 발전을 가능케 하는 문명화의 동력으로 간주하였다(장명학, 2004). 그리고 독립신문 논설에 담긴 담론을 학문, 종교, 법률, 애국, 언론의 기능 등 다양한 주제 영역에서 분석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독립신문이 추구한 근대화 담론의 성격을 다면적으로 조명한다. 우선 학문론에 있어 독립신문은 ‘구(舊)를 버리고 신(新)을 받아들여야 한다’라는 입장을 견지하며, 문명국으로의 진입을 위한 전제 조건으로 서구 학문 수용을 강조하였다. 이는 ‘문명 → 개화 → 외국 통상 → 서구화’라는 직선적 근대화 서사를 기반으로 하며, 당시 한국 내 근대 지식의 상당수가 일본을 매개로 유입되었음을 언급함으로써, 근대 지식체계가 서구 중심주의와 일본식 경유를 통해 형성되었음을 지적한다(허재영, 2014). 독립신문이 전통적인 동양의 학문과 지식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조속히 폐기해야 할 대상으로 단정한 점에 대해서는 비판적 입장을 제기한다. 이는 조선 사회의 전통과 현실을 과도하게 폄훼하고 부정적으로 인식함으로써, 오히려 구미 열강의 침탈과 지배를 ‘문명화의 필연적 결과’로 수용하는 모순된 시각을 내포할 위험성을 안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김영희, 2013).
독립신문이 다양한 위생 담론을 적극적으로 전개함으로써 대중에게 위생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계몽하는 동시에, 정부에 대해서는 위생 정책의 제도적 시행을 촉구하였다고 평가한다. 위생에 대한 담론이 단지 백성의 건강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국가의 존립 및 문명국으로의 진입과도 밀접하게 연관된 실천적 과제였음을 강조한다. 독립신문은 당시 조선 사회에서 위생의 개념, 중요성, 실행 방식에 대한 이해 부족이 민중뿐 아니라 정부 관료층에도 만연해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정부 역시 계몽의 대상으로 포함시켰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중과 정부를 동시에 대상으로 하는 이중의 계몽 전략을 수행하였으며, 이는 위생을 통한 전 사회적 문명화의 시도를 반영한다. 특히 위생은 문명과 비문명을 구분하는 핵심 지표로 제시되었다. 비위생은 곧 비문명적, 나아가 야만적 상태로 간주하였으며, 위생은 개인 건강의 유지뿐 아니라 국가의 품격과 생존, 문명국으로서의 외교적 인정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국가적 사안으로 인식되었다. 이에 따라 독립신문은 타국의 시선을 내면화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인민이 위생 실천의 당위성을 외부 기준에 따라 자발적으로 수용하도록 만드는 담론 전략을 구사하였다(김소영, 2023).
구체적으로 독립신문이 인구 관리, 도시 및 도로 위생, 개인위생, 공중위생, 식수 위생, 위생 규칙, 위생경찰 등 제도적·생활적 위생 영역 전반을 포괄하는 논설을 전개하였음을 강조한다. 이는 위생이 단지 개인의 차원을 넘어, 국가 생존과 직결되는 집합적 문제로 확장되어 이해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독립신문은 인구 감소의 원인을 비위생 상태로부터 찾았으며, 따라서 위생 실천은 단순한 개인의 자기관리나 도덕적 책임을 넘어, 국가적 책무로 간주하였다. 나아가 비위생이 광범위하게 확산한 원인으로는 일반 인민의 위생 개념에 대한 인식 부족이 지목되었으며, 독립신문은 이들에게 구체적인 실행 방식과 그 당위성을 동시에 제시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접근은 근대 인민 형성의 조건으로서 위생 담론을 활용하는 대표적 계몽 언론의 전략으로 평가될 수 있다(김소영, 2023).
독립신문이 국내 정치·사회적 실상을 국제사회에 효과적으로 알리고자, 한국 최초로 영문판을 병행 발행한 사실에 주목하였다. 이는 단순한 언어의 병행 사용을 넘어, 국제 여론 형성과 외교 전략 차원에서의 자주적 정보 주도권 확보를 지향한 실천으로 평가된다. 영문판 The Independent의 발행은 서구 열강에 대한 외교적 설득과 한국 근대화의 정당성을 국제사회에 적극 표명하려는 시도로서, 식민주의적 시선에 맞서 조선의 주권적 위상을 강화하고자 했던 매체적 실천의 일환이었다. 더불어 독립신문이 전개한 계몽 담론은 자주독립에 대한 집합적 의식 형성의 결정적 전기를 마련하였다. 이는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민중 내부에 내재한 피지배적 인식을 깨우고, 독립이라는 국가적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현실로 구체화하는 데 이바지하였다. 계몽의 이념은 정치적 주체로서의 인민 형성, 법치주의에 기반한 근대국가 건설, 그리고 식민 침탈에 대한 비판적 자각을 촉진하는 핵심 동력으로 기능하였다(이병철, 2023). 마지막으로 국문 의식과 학문론에 대한 논의에서, 그는 서구 중심의 신학문 수용이 지배적인 흐름이었음에도, 그 매개 언어로서의 국문(한국어)이 지닌 핵심적 위상에 주목한다. 국문은 단지 학문의 전달 수단이 아니라, 서구 중심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잠재적 담지자로 간주하며, 이는 독립신문이 언어를 통해 근대 주체 형성을 추구하였음을 시사한다(허재영, 2014).
선행 연구들이 공통으로 강조하듯 독립신문은 ‘인민 계몽’을 핵심 사명으로 삼고 있으며, 이를 통해 법치주의 확립, 경제 자립, 남녀 평등, 위생 개선, 전통 인습의 개혁 등 근대 인민 국가(민주국가) 건설을 위한 다방면의 과제를 체계적으로 제시하였다(김소영, 2023). 근대화의 격변기 속에서 독립신문의 간행은 장기간 지속되지는 못했으나, 그 지면에 담긴 문제의식과 비판 정신, 그리고 계몽의 실천은 근대국가 형성을 위한 의미 있는 외침이자 사상적 기반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리고 독립신문 논설은 인민 계몽이라는 교육학적 측면뿐 아니라, 근대 인민 국가 형성, 공론장 구축, 언론의 이념성 등 다 학제적 연구의 토대를 제공하는 중요한 담론 자료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Ⅲ. 연구 방법
본 연구는 1896년 4월 7일 창간호부터 1899년 12월 4일 폐간호까지 연재된 총 249편의 논설을 분석하였다. 본 연구는 독립신문에 수록된 전체 논설을 대상으로 교육학적 함의에 기반한 체계적 분류 작업을 수행하였다. 분석은 대분류, 중분류, 소분류의 3단계로 나누어 이루어졌으며, 각 단계는 다음과 같은 기준에 따라 구성되었다.
우선 대분류에서는 각 논설이 교육적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지, 혹은 교육적 목적을 내포하고 있는지를 중심으로 선별하였다. 이는 단순히 교육이라는 명시적 언급 여부를 넘어서, 논설의 구조와 의도 속에 교육적 기능이 잠재되어 있는지를 기준으로 하였다. 다음으로 중분류에서는 교육적 함의의 구체적 방향성을 분석하였다. 이를 위해 각 논설이 포괄하고 있는 주제 영역, 예컨대 경제, 인권, 조혼, 남녀 평등, 법률, 위생, 독립사상 등이 어떠한 방식으로 교육적 의미를 가지는지를 검토하였다. 이를 통해 논설이 지향하는 사회적 변화가 교육적 메시지로 연결되는 지점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마지막으로 소분류는 논설 내에 ‘교육’이라는 용어가 직접적으로 사용되었는지와 해당 어휘가 어떤 맥락에서 기능하고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분석하였다. 특히 ‘교육’이라는 단어가 단순히 언급되는 수준을 넘어, 교육의 필요성과 그 실천 방식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포함되어 있는지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이와 같은 다층적 분류 작업을 통해 독립신문 논설의 교육학적 구조와 함의가 더욱 명확하게 드러났으며, 이는 조선 근대 계몽기의 사상 지형을 교육적 관점에서 재조명하는 데 유의미한 기초 자료로 기능한다.
대부분의 논설은 인민 계몽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전체 249편의 논설 가운데 교육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논설은 총 52편에 이른다. 이 중 ‘교육’이라는 용어를 명시적으로 언급한 논설은 20편으로 확인된다. 대분류에서 교육학적 내용으로는 국민 협업, 법률의 중요성, 정치학의 중요성, 국가 기관의 역할 및 인민의 권리, 여성 인권, 정치와 현 정권의 무능함, 정치의 중요성, 교육의 중요성, 화페의 중요성, 위생, 관리의 중요성, 종교와 샤머니즘의 폐해, 치도, 금융학의 중요성, 자주독립의 중요성, 개혁, 자율성의 중요성, 교육자료의 부재, 조혼 금지, 각 정부 부처의 역할, 관료들의 지침, 중첩 제의 폐해, 민주 시민 의식, 식민지 근성에 대한 지적, 종교, 학생운동, 학교 설립의 중요성(여성학교), 의료 교육의 필요성과 체계의 부재, 샤머니즘의 근절, 문명국이 되기 위한 지침과 문제점 지적, 유소년 교육 등이다.
Ⅳ. 연구 결과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교육 관련 논설을 중심으로, 그 안에 내포된 교육학적 함의를 여러모로 분석하고자 하였으며, 논설의 내용적 특성과 강조점을 기준으로 몇 가지 범주로 분류하여 체계적인 카테고리별 분석을 시행하였다. 논설에 내포된 교육학적 함의를 중심으로 범주를 설정하고, 이를 대분류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분류하였다. 특히 상위 다섯 가지 핵심 교육 범주를 도출하고, 그와 더불어 바로잡고자 한 가지 부분으로 범주화를 수행하였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주제별 논설 편수를 집계할 수 있었다. 인민 교육 및 계몽을 주제로 한 논설이 총 21편으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였고, 이어 위생 및 보건 관련 논설 7편, 종교 및 무속신앙 비판과 관련된 논설 4편, 경제 관련 계몽 논설 11편, 인권 및 사회적 정의와 관련된 논설이 8편으로 집계되었다. 이와 같은 분류 작업은 독립신문 논설이 당시 사회 전반의 구조적 문제를 어떤 교육적 관점에서 조명하고 있었는지를 분석하기 위한 기초 자료로 활용되었다.
1. 인민 교육
정치의 중요성과 정치학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그동안의 미비한 점들을 비판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또한 정치가 정당하게 확립되지 않을 때 인민이 직면하게 되는 다양한 폐해와 혼란을 중점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정치학이라 하는 학문은 문명개화한 나라에서들 여러 천 년을 두고 여러 만 명이 자기 평생에 주야로 생각하고 공부하여 만든 학문인데 정부에 관인이 되어 가지고 이 학문을 배우지 안 하여서는 못쓸지라 이 학문을 안 후에도 본래 십지가 그란 사람은 못된 일하는 사람이 많이 있는데 하물며 이 학문도 없는 이가 정부에 있으면 몰라서 잘못하는 이도 있고 마음이 글러서 잘못하는 이도 있는지라. (1896년 4월 14일)
그동안 인민은 국가가 어떠한 체계와 원리로 운영되는지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무지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이에 대해 국가의 제도가 시행하는 역할과 기능을 밝히는 한편, 인민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에 대해서도 강력히 역설하고 있다.
관찰사와 원이라하는 것은 임금이 백성에게 보내신 사신이요 법 지키는 백성에게 종이요 무법한 백성에게 법관⋯ 중략⋯ 정부 명령을 백성에게 자세히 전하고 백성의 사정을 정부에 자세히 기별하여 정부에서는 백성의 일을 알게 하고 백성은 정부에 일을 알게 하여⋯ 중략⋯ 우리 생각에 원과 관찰사란 것은 법 지키는 백성의 종인 것이 그 백성들을 위하여 임금이 각 지방에 보내신즉 그 사람은 다만 임금의 심부름만 할 뿐 아니라 백성의 심부름도 하라신 것이니. (1896년 4월 16일)
세계 제일의 지식인에게 조선이 부강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으니, 그는 “교육”이라고 답변하였다.1) 이러한 일화를 통해 조선이 오로지 한문에 의존하는 한 청나라의 지배적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또한 일본이 서양의 선진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강대국으로 도약한 사례를 들어, 우리 조선도 더 이상 한문에만 매달려서는 안 되며, 새로운 학문과 지식을 포용해야 함을 강력히 역설하고 있다.
문명 개화한 나라에서는 남녀 구분 없이 학교에 가서 적어도 10년 동안 여러 가지 학문을 배운 뒤에야 비로소 세상에 나가 벼슬을 하든 농사를 짓든 장사를 하든 무슨 일을 하든 한다. 그런데 조선 사람들은 겨우 한문만 조금 배우고는 그것만 믿고 총리 대신 노릇을 하려 하고, 각 부서와 시정을 맡으려 하고, 육군 대장 노릇도 하려 한다⋯ 중략⋯ 조선도 오늘부터라도 인민 교육에 힘쓰면 불과 몇 해 지나지 않아 정부와 인민이 서로 도와주게 될 것이며, 마음을 합쳐서 진정한 개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하면 누구나 직업이 있어 나라 안에 노는 사람이 없을 것이며, 가난도 사라지고 모든 사람이 부유하게 될 것이다. 이 선생의 말을 깊이 생각하고, 당장의 작은 이익과 욕심을 버리고 인민 교육에 힘써서, 몇 년 뒤에는 조선도 다른 나라처럼 되기를 바란다. (1896년 4월 25일)
1896년 4월 30일 자에서는 조선이 부국강병을 시도하려면 교육을 통해 인민이 스스로 일하고 벌어먹도록 하고, 정부는 놀고먹는 자를 벼슬에서 배제해 진정한 자립을 이루게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조선이 부국강병(나라를 부유하고 군대를 강하게 함)하려면 인민이 모두 교육을 받아 스스로 일하고 벌어먹을 능력을 갖추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길이다. 그리고 정부는 놀고먹으려는 사람에게 벼슬을 주지 말고, 인민이 스스로 생업을 갖도록 도와야 한다⋯ 중략⋯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 외국어·제조·기술을 배우게 해야 무기를 많이 주는 것보다 훨씬 낫다. 스스로 벌어먹을 줄 아는 사람은 누구보다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남에게 의지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1896년 4월 30일)
1896년 5월 12일 자에서는 정부가 나라를 살리고 부강하게 만들려면 인민 교육, 특히 남녀 차별 없는 교육을 가장 우선시해야 하며, 여성 교육의 중요성 또한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1896년 5월 23일 자에서는 개혁은 철저한 순서와 충분한 준비 과정이 있어야 하며, 우선 핵심적인 기반 즉 기둥을 단단히 세운 뒤에야 비로소 외형적인 요소-장판이나 장식-을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의 개화 과정은 이러한 기초 작업 없이 외형적 변화에만 치중함으로써 오히려 국가의 체제를 허약하게 만들고 있으며, 기존 제도를 폐지하기에 앞서 더 정교하고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심각한 혼란과 혼돈을 불러올 수 있음을 강력히 경고하고 있다.
1896년 5월 26일 자에서는 주목할 점은, 개인의 자율에 대한 인식을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기존의 일방적 규율과 강제의 시대적 사유에서 벗어나, 자율적 행동과 선택을 중시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보여주며, 이러한 사상적 전이를 인민들에게 교육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
머리 깎기와 양복 착용은 개화의 본질적 요소는 아니지만, 백성에게 실질적인 유익을 가져다주는 변화로 평가되고 있다. 이에 따라 복장이나 머리 모양에 대한 규제는 강제적으로 시행할 사안이 아니라, 각 개인의 자율적 선택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서술하고 있다. 다만, 군인과 순검과 같은 공무를 수행하는 이들은 직무의 특성상 서양식 외형에 대한 일정한 통일성과 규율이 필요하므로, 이들에게는 명확한 기준이 요구된다고 밝히고 있다. (1896년 5월 26일)
1896년 5월 30일 자에서는 ‘조선의 국토, 인구, 경제 등에 관한 통계가 부족한 것은 심각한 문제이며, 국가와 인민이 모두 자기 나라의 실정을 알아야 한다. 조선은 면적과 인구 면에서 세계적으로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니며, 자원도 풍부하고 기후도 좋아 발전 가능성이 높다. 조선이 발전하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은 인민의 무지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 조선인은 동양에서 가장 우수한 인종이므로, 잘만 가르치면 문명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다만 나라가 이러한 것은 인민들이 학문이 없어 그런것인즉 상등 나라가 되려면 인민 교육 하는 것이 제일이란 말을 알 듯 하노라 인종인즉 조선 사람들이 동양에 제일 가는 인종인 것이 청인은 느리고 더럽고 완고 하여 좋은 것을 보아도 배우지 안 하고 남이 흉을 보아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일본 사람들은 문명 한 것을 본 받기를 잘 하나 성품이 너무 조급한 고로 큰 일을 당 하면 그릇덜이는 일이 있거니와 (1896년 5월 30일)
1896년 6월 2일 자에는 벼슬을 통해서만 국정에 참여하려는 사고방식은 실질적 효용성이 없으며, 평민의 신분이라 하더라도 이바지할 수 있는 유익하고 구체적인 사업은 다양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조선 사회에는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자 하는 인민적 열의는 존재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교육용 서적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국문 번역서를 출판·보급하는 사업은 인민 교육과 문명개화에 중대한 이바지를 할 수 있는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더 나아가, 출판 사업은 단지 교육적 측면에 그치지 않고, 경제적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유망한 산업이기도 하며, 나아가 국가 전체의 문명화와 진보를 견인할 수 있는 핵심적인 사업임을 강조하고 있다.
1896년 6월 25일 자에서는 국가에 대한 불만이나 민원, 그리고 인민의 의사를 어떻게 표현하고 제도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인민이 단순한 지배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고 그것을 관철할 수 있는 주체로 인식되기 시작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곧 절대 군주 체제에서 민주적 정치 질서로의 이행을 위한 인민 의식의 성장과 자각을 반영하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육영 공원 교원 세 분과 학도 구십 팔명이 학부 대신에게 한 편지를 보니 생등이 들은즉 귀대신이 훈령하사 생등의 지금 입은 복장을 벗고 전에 연무 할 때 쓰던 복장을 입으라 하되 입는 시간 까지 정한 하였다 하니 생등이 우리 나라 문사만 배우는 학도 뿐이 아니라 영어와 서양 각국 한문 까지라도 배우는 학도요 무관 학도는 아닌즉 전에 연무 할 때 쓰던 복장을 입기 싫고 또 생등을 억지로 이 복장을 입히는 것이 예모에 당연치 아니한 일⋯ 중략⋯ 대군주 폐하께서 조칙을 내리서 대소 신민은 빈부와 귀천을 의논하지 말고 아무 의복이든지 편할 때로 입고 머리도 편할 때로 하라 하셨사오되 각 학교 학도라고 그 조칙에 빠진 일은 없사오매 생등이 대군주 폐하의 성칙을 봉준 하는 것이 어찌 죄책이 되리이까. (1896년 6월 25일)
1896년 7월 25일 자에는 ‘조선이 가난한 이유는 천연 조건이 나쁜 것이 아니라, 농사법과 종자 관리의 부재 때문이다. 개화한 국가들은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로 진보해 왔으나, 조선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 조선의 교육 풍속은 옛것만을 고수하게 하여 창의적 사고와 발전을 억제하고 있다. 옛 발명품을 그대로 쓰는 것은 진보를 막는 걸림돌이며, 지금 필요한 것은 더 좋은 기계와 학문 개발이다. 농사는 과학이고 학문이며, 정부 주도로 새로운 농법과 종자 보급이 필요하다. 진보와 창의성을 중심으로 한 농업 교육 혁신이 조선의 부강을 위한 핵심이다’라고 역설하고 있다.
1896년 8월 1일 자에는 조선인은 학문의 기회가 부족하고 교육 수준이 낮은 탓에, 타인으로부터 멸시를 당하는 현실조차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으며,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조선 사람들은 스스로 외국인보다 열등하다는 열패감에 사로잡혀 학문과 기술 습득에 대한 의지마저 상실한 상태이며, 외세로부터 치욕을 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원인을 분석하거나 개선하려는 적극적 태도는 빠져 있다. 또한, 권력을 쥔 이들조차 과거의 부정과 협잡을 답습하며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고, 외국의 제도와 문물을 수용하여 사회를 개화시키려는 인식과 실천 역시 현저히 부족한 실정이다. 이러한 습관적 퇴행과 반성 없는 태도는 결국 사회 전반의 병폐를 심화시키며, 과거의 실책을 성찰하지 않으면 국가와 사회가 다시금 병들고 몰락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조선 사람이 남에게 눌려만 지내 버릇 한 까닭에 생각들 하기를 남의 나라 사람만 재조든지 힘이 못한 줄로 알고 남이 잘 하는 일을 보아도 당초에 그것을 본 받을 생각도 아니 하고 남이 조선 사람들이 못 하는 일을 행 하는 것을 듣고 보아도 당초에 그 사람들이 어찌 하여 그 일을 능히 하고 어찌 하여 그런 재조를 가지고 어찌 하여 그런 학문이 있는 연고를 물어 그 사람들과 같이 이런 재조와 학문과 지식이 있게 될 생각들은 아니 하고⋯ 중략⋯ 그 사람들은 영국이나 미국이나 덕국이나 법국 사람이니까 그런 일을 능히 하거니와 우리는 조선 사람이니까 그런 것을 못 할 줄로 알고 당초에 알려고도 아니 하고 본 받으려고 아니 하고 공부 할 생각들도 아니 하며 밤낮 남에게 치소를 받고 업신 여김을 받고 약 하고 가난 하고 무식 하고 어리석고 병신 구실들을 하면서도 그래도 그것을 즐겁게 여겨 남이 업신 여겨야 분히 여기는 생각도 없고 (1896년 8월 1일)
1896년 9월 5일 자에서는 조선의 여성 교육을 중심으로, 전반적인 교육 현실의 열악함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당시 조선의 교육 수준은 매우 저조하며, 전체 인구 대비 학교에 다니는 인구 비율이 극히 낮아 문명국들과의 격차가 심각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논설은 조선 부모들이 자녀 교육에 무관심할 뿐 아니라, 자녀가 자신보다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하기를 바라지 않는 태도를 문제 삼는다. 이는 단지 개인의 안일함을 넘어, 국가 전체의 미래를 위협하는 구조적 문제로 인식되고 있으며, 젊은 세대에 대한 교육 결핍은 조선 사회가 희망을 상실하게 되는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특히 여성 교육의 부재는 더 심각한 문제로, 조선은 여성 인구 절반을 인적 자원으로 활용하지 못한 채 사실상 방기하고 있다는 날카로운 비판이 제기된다. 이에 따라 여자아이들을 위한 여학교 설립이 시급하다고 주장하며, 이는 단지 여성 권리의 확대에 그치지 않고, 국가 경제와 사회 전반에도 긍정적 파급 효과를 가져올 것임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여성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으로 해야 할 도리에 부합하는 것이며, 이를 실현하는 자세가 진정한 장부, 즉 도덕적 주체의 품격이라고 역설한다.
조선에 학교에 다니는 사람들이 전국 인구 수효와 비교 하여 보면 오천 명에 하나가 학교에 가지를 못 하니 후생을 가르치지를 아니 하면 필경 조선은 잘 되어 보는 날이 없을 터이니 어찌 한심한 일이 아니니요⋯ 중략⋯ 조선이 잘 되고 못 되기는 조선 젊은 사람에게 매였는데 만일 이 젊은 사람들을 교육을 못 시켜 놓거드면 조선은 몇 십 년 후라도 지금에서 조금치도 나아질 여망이 없는지라⋯ 중략⋯ 불쌍한 조선 계집 아이들을 위하여 여학교를 몇을 세워 계집 아이들을 교육을 시키거드면 몇 해가 아니 되어 전국 인구 반이나 내버렸던 것이 쓸 사람들이 될 터인이니 국가 경제학에 이런 이는 없고 또 천히 하고 박대 하던 여인들을 사나이들이 자청 하여 동등권을 주는 것이니 (1896년 9월 5일)
1896년 9월 15일 자에서는 조선의 교육정책에 대한 구체적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당시 우리나라는 기술력의 부족으로 인해 산업적 기반이 매우 취약한 상태였으며, 이에 따라 정부가 시급히 추진해야 할 과제로 ‘권공장’이라 불리는 기술 교육 기관의 설립을 제안하고 있다.
논설은 단순히 백성에게 금전을 지급하는 방식은 국가의 법제와 경제 원리에 어긋날 뿐 아니라,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비효율적인 정책임을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백성이 진정으로 자립하고 생계를 유지하려면, 직업적 기술을 습득함으로써 스스로 일하고 살아갈 수 있는 역량을 길러야 하며, 이를 위한 체계적 기술 교육의 보급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근대적 경제구조로의 전환과 인민 역량 강화를 위한 정책적 전환의 하나로 해석될 수 있다.
정부에서 제일 급히 할 일이 권공장이라 권공장이라 하는 것은 정부에서 크게 학교를 세우고 인민을 모집 하여 각색 공업을 가르치는 처소라 정부에서 아무 것도 모르는 백성들을 불상 하다고 의사 없이 돈 주는 것은 국법에도 틀릴 뿐더러 경제학에 옳지 안 한 것이요. (1896년 9월 15일)
1896년 9월 24일 자에서는 조선 사회의 후진성을 극복하기 위해 인민의 의식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조선의 낙후된 현실은 미래를 대비하지 않고 오직 눈앞의 이익과 당장만을 중시하는 단기적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라 진단하고 있다.
개화한 문명국의 인민들은 장기적인 성공과 사회 발전을 위하여 현재의 고생과 절제를 감내하며 학문과 기술을 익히지만, 조선 백성은 하루하루의 안위에만 집착하고 장기적 안목 없이 살아가는 습성을 보인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러한 태도는 단지 개인에게 국한되지 않고, 국가 예산 집행과 정책 결정에도 반영되어, 미래를 고려한 계획 없이 그때그때의 필요에 따라 운영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조선인들이 더 장기적 관점에서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고, 후세를 위한 교육적 의식과 예지적 사고를 갖춰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내일은 어찌 되었던지 오늘 돈 있다고 다 써 버리는 것은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이라 그런고로 조선 사람들은 관민 간에 좀 앉아 백사를 생각 하여 보고 남을 시비를 한다든지 칭찬을 하는 것이 일 답고 말 다운지라 우리는 바라건대 조선 사람들이 후일 생각 하는 학문을 배우기를 원하노라. (1896년 9월 24일)
1896년 10월 10일 자와 11월 28일 자에서는 관직을 맡는 사람은 반드시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을 이수한 자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조선의 후진성이 관료와 일반 백성 모두의 학문적 결핍에서 기인한다고 진단하면서, 국가 발전의 근본적 조건은 인민 전체의 교육 수준 제고와 학문에 대한 전면적 열의에 달려 있음을 역설한 것이다.
논설은 특히 정치, 경제, 외교 등 국가 운영의 주요 분야에서 실질적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학문과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필수적이며, 이는 곧 근대국가로의 이행을 위한 필연적 과제임을 밝히고 있다. 관민 모두가 학문을 통한 실력을 갖추는 것만이 조선을 진정한 문명국으로 이끌 수 있다는 의식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지금 조선이 이렇게 약하고 가난하고 백성이 어리석고 관인이 변변치 못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관민이 다 학문이 없는 까닭인즉 조선이 강하고 부요하고 관민이 외국에 대접을 받으려면 이 사람들이 새 학문을 배워 구습을 버리고 개화한 자주 독립국 백성과 같이 되어야 (1896년 10월 10일) / 사람이 학문이 없으면 마음인즉 얼마큼 바르고 옳은 일을 하고 싶은 생각이 있으되 능히 못 하는 것이 첫째는 일을 서두를 줄을 모르니 중대한 일을 자세히 모르는데 시작 하기가 어려워서 유로 못 하고 (11월 28일)
1896년 11월 14일 자에서는 국제사회 속 일원으로서 조선인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생활 예절과 교양에 대해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조선은 더 이상 고립된 국가가 아니라 외국과의 교류가 불가피한 국제적 관계망 속에 자리 잡고 있으며, 이에 따라 외국인의 관습과 예절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태도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특히 신뢰(信)를 대인 교제의 핵심 덕목으로 제시하며, 이는 약속을 철저히 지키고 거짓말하지 않는 습관에서 출발한다고 설명한다. 신뢰를 상실한 사람은 국제사회는 물론, 어떠한 인간관계 속에서도 존중받을 수 없다는 점을 경고하고 있다.
조선인이 국제적 교양을 갖추기 위해서는 서구의 기본적인 예절과 사교 방식을 적극적으로 익혀야 하며, 외국 부인과의 응대, 식사 시 태도, 복장, 언어 사용, 행동거지 등 일상생활의 사소한 부분까지도 예의와 품격을 갖추어야 국제사회에서 문명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러한 생활 속 예절의 습득은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문명화와 개화의 필수적 구성요소로 간주하며, 조선인이 국제적 시민으로 성장하기 위한 실천적 과제로 제시되고 있다.
1896년 12월 1일 자에서는 조선의 교육 제도 전반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특히 의료 교육 체계의 시급한 정비를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조선 사회에는 철저한 교육과 자격 검증을 거치지 않은 무자격 의원과 침술 시술자가 다수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은 해부학이나 약학에 대한 기초적 지식조차 없이 무분별하게 진료 행위를 자행하고 있어 백성의 생명을 위협하는 중대한 해악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논설은 외국의 경우, 의사 자격은 엄격한 교육과 시험을 통과한 자에게만 부여되며, 이는 인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문명적 제도임을 상기시킨다. 이에 비추어 볼 때, 조선 정부 역시 최소한 침술과 같은 비과학적 치료 행위에 관해서는 법률로 금지해야 하며, 이는 단지 규제가 아니라 인민 생명을 지키기 위한 필수적인 조치임을 강조한다. 아울러 무당, 판수, 제를 올리는 스님 등 미신적 행위 역시 질병을 치료하기는커녕 오히려 병세를 악화시키며, 백성의 생명을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이러한 미신 행위와 침술의 근절은 경무청과 한성부가 책임지고 엄정히 단속해야 할 사안으로 명시된다.
비록 해당 직역에 종사하는 이들이 이에 반발할 수는 있으나, 논설은 정책이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이해관계를 넘어서 공공의 이익을 위한 정의로운 수단이어야 하며, 일시적인 원망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단언하고 있다. 이는 곧, 백성의 생명권 보호와 문명국가로의 전환을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의 하나로 해석될 수 있다.
1896년 12월 22일 자 논설에서는 조선 사회에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 있는 양반 신분에 대한 맹목적 숭배를 비판하고, 개화기 이후의 새로운 사회 질서가 신분이 아닌 능력과 학문 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함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논설은 양반 가문이라 할지라도 자식 교육에 소홀하다면 머지않아 몰락하게 될 것이며, 전통적으로 가르쳐온 사서삼경 중심의 교육은 더 이상 실질적인 효용을 가지지 못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경고한다. 오늘날의 생존과 사회적 인정은 오직 학문과 실력에 달려 있으며,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유능한 인재로 성장하는 것만이 개인과 가문이 살아남을 길임을 역설한다. 이에 따라 평민의 자손이라 하더라도 학문을 배우면 상등 백성이 될 수 있으며, 반대로 양반 가문이라도 무식하면 오히려 천한 일을 하게 되는 시대적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한다. 양반 부모는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것은 물론, 가능하다면 외국 유학까지 시켜야 공명과 부를 함께 얻을 수 있으며,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가문의 미래를 담보하는 길임을 강조한다.
결론적으로, 학문을 가르치는 일은 논밭을 사 주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는 투자이며, 조선의 양반 계층은 더 이상 과거의 신분 특권에 안주하지 말고, 교육을 통해 변화된 현실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1897년 1월 19일 자에서는 ‘독립’의 참된 의미를 조명하고, 애국지사의 개념을 정립함과 동시에 인민들에게 애국심을 고취하고자 하는 의도를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
논설은 당시 조선 백성 다수가 ‘독립’이라는 개념에 대해 무지하였음을 지적하며, 이를 바로잡기 위해 미국의 독립 선언문을 번역·소개함으로써 독립 정신과 외세에 대한 경계 의식을 널리 알리고자 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자주 국가로서의 정체성과 의식을 인민 스스로 성찰하게 하는 계몽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독립운동에 투신한 인물들을 통해 젊은 세대가 각성하고 있으며, 이들 청년이야말로 조선을 다시 일으킬 중흥의 주역이 될 것임을 천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인민들은 임금과 동포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보호하는 자세를 바탕으로, 나라의 자주성과 번영을 함께 도모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진정한 애국이란 일상적 실천과 공동체적 책임에서 비롯된다는 사상을 제시하고 있다.
1897년 2월 23일 자 논설에서는 조선이 천연자원과 인구, 지리적 조건 등 여러 면에서 유리한데도 세계에서 가장 낙후된 국가 중 하나로 전락한 근본 원인을 ‘학문 부족’에서 찾고 있다. 이는 단순한 교육 문제를 넘어, 조선 사회 전반에 걸친 구조적 부패, 개인주의적 이기성, 정부의 무능, 그리고 백성들의 정치·사회에 대한 무관심이 맞물린 결과로 진단되고 있다.
논설은 개인이 각자도생의 태도로 살아가면 국가는 필연적으로 외세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으며, 반대로 인민이 하나로 힘을 합치면 세계 어느 국가도 조선을 침탈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는 곧, 개인의 각성이 집단적 저항력과 국가의 자주권을 가능케 한다는 사상을 반영한 것이라고 하고 있으며, 서양의 소국들조차도 자주독립을 이룬 뒤 학문과 실천을 통해 부강한 문명국으로 성장한 사례를 들며, 조선 또한 그와 같은 길을 걸을 수 있음을 역설한다. 조선이 자강과 개화를 통해 충분히 근대국가로 도약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함으로 국왕이 복위한 지금이야말로 온 인민이 과거의 무지와 퇴행을 버리고, 서로 협력하여 문명국가로 나아갈 수 있는 결정적 전환점임을 강조하며, 전국적인 각성과 단결을 촉구하고 있다.
1897년 4월 3일 자에서는 문화시민과 문명국으로 가기 위한 현재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논설에서는 조선이 더 이상 외부와 단절된 고립 국가가 아니라, 국제 교류의 흐름 속에 편입된 자주국임을 전제하며, 이에 따라 조선인의 생활 환경이 외국인에게 노출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조선 각지, 그중에서도 외국인이 자주 출입하는 마을과 항구 지역의 위생 상태가 극히 불결하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이에 따라 외국인의 조롱과 경멸을 하고 있음은 국가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주는 문제라고 경고한다. 이는 단지 체면의 문제가 아니라, 인민 건강을 위협하고 국제사회에서 조선의 위신을 실추시키는 중대한 사안으로 규정된다. 정부가 이러한 위생 문제를 방치하는 것은 도의적 책임과 행정적 책무를 모두 저버리는 일이며, 각 지방관은 도로 정비와 하수 처리 등 도시 환경 개선에 대한 직접적 의무를 져야 한다고 명확히 밝히고 있다. 특히 외국인의 왕래가 잦은 항구 지역은 조선의 얼굴과도 같은 공간으로, 각별한 관리와 노력이 요구된다. 논설은 단순히 백성의 자발적 각성과 개선 의지만을 기다리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이며, 정부가 나서서 강제적 조치를 통해서라도 위생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방의 감리 등 행정 책임자는 주도적으로 위생 정비 사업을 시행해야 하며, 필요할 경우 중앙정부에 도움을 요청하여 적극적으로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촉구한다.
결국 외국인 출입이 잦은 지역의 지방관들에게 주는 강력한 당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조선이 문명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도시 환경과 공공 위생의 개혁을 서둘러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1897년 4월 20일 자에서는 제도나 정책의 실효성은 인민의 교육 수준과 의식 수준에 달려 있으며, 인민적 기반 없이 시행되는 제도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논설은 외국의 법률이나 제도를 無 비판적으로 도입하는 것은 조선의 현실과 동떨어진 처사이며, 그러한 제도의 정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인민의 인식을 높이는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육은 곧 ‘땅에 거름을 주는 일’에 비유되며, 이는 문명개화의 씨앗이 뿌리내리고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하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그 본질적 중요성이 드러난다. 따라서 조선 전역에 걸쳐 학교를 설립하고, 적어도 10년 이상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인민의 의식을 계몽한 뒤에야 비로소 외국의 제도와 법률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된다고 보았다.
결국 조선의 개화는 서구 문물을 급하게 모방하는 방식으로 추진될 일이 아니라, 인민 계몽과 학력 향상을 토대로 점진적이고 내실 있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이는 개화의 속도보다 방향과 기반의 정당성을 중시한 신중하고 교육 중심의 개혁론을 말하고 있다.
1897년 9월 16일 자에서는 조선의 장기적 번영을 위한 핵심 과제로 ‘인재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는 단순히 나무를 심는 것보다도 훨씬 중대한 일임을 역설하고 있다. 특히 교육의 중심은 도덕 교육에 두어야 하며, 이는 곧 자기 마음을 속이지 않고 타인을 기만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일에서 출발한다고 밝힌다. 교육의 궁극적 목적은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과 더불어, ‘선을 실천하고 악을 피하는 힘(근력)’을 기르는 데 있으며, 이는 단순한 지식 습득이 아니라 실천적 역량의 형성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논설은 선악 분별과 실천력은 어릴 때부터 역사와 세계 학문을 통해 체계적으로 길러야 하며, 조선이 위기에 처한 근본 원인은 선과 악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것을 실천할 힘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아울러 부끄러움을 모르는 문화, 그리고 부끄러운 줄 알면서도 그것을 고치려 하지 않는 태도가 조선 사회의 후진성을 더욱 심화시켰다고 비판한다. 진정한 문명화는 일부 관료나 상류층만의 특권이 아니라, 전 인민이 고루 혜택을 누리는 보편적 가치임을 강조한다. 결론적으로, 학문은 단순한 지식 축적이 아니라 선과 악을 올바르게 판단하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기르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하며, 실천력이 모자란 지식인은 오히려 사회와 국가에 해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이에 따라 모든 인민은 특히 젊은 세대에게 실천력 중심의 교육을 시행함으로써, 조선의 미래를 견고히 다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1896년 5월 16일 자에는 조선은 자주 독립국으로서 러시아나 일본 등 외국의 보호를 받는 것을 단호히 반대하고 있다. 외국의 보호는 독립을 포기하는 것이며, 두 나라의 보호를 동시에 받는 것은 주인이 둘인 굴욕적인 처사로 규정된다. 조선이 일본의 내정 간섭을 받게 된 것 또한 조선 스스로 가져온 결과라는 점을 지적하며, 외세 의존보다 자강의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비록 학문이 부족하더라도 외국의 학문과 지식을 받아들일 수는 있으며, 이를 통해 실질적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모든 외국과는 평등한 외교 관계를 유지해야 하며, 만약 불공정한 대우를 받을 경우, 인민 전체가 하나 되어 이에 항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조선인은 스스로 인민을 존중하고 자긍심을 가질 때에만 독립국으로서의 위상을 온전히 유지할 수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1896년 5월 28일에서는 ‘조선의 진정한 독립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러시아와 일본 간의 담판에서 조선 환궁, 외국 군대 철수, 전신선 반환 등이 실현되어야 한다. 외세의 도움도 중요하지만, 조선 스스로 책임을 다해야만 독립이 지속 가능하며, 외국 의존, 사적 권력다툼, 무능한 인사 등은 나라를 해치는 행동으로, 결국 조선을 종속 국가로 만들 위험이 있다. 조정과 백성이 공평하고 정직하게 협력할 때만이 조선은 부강하고 존중받는 독립국으로 설 수 있다’라고 하였다.
2. 위생 교육
1896년 5월 2일 자에서는 조선 인민이 동양 최고의 민족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병이 없고 건강한 몸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이를 위해 정부가 깨끗한 식수 공급을 비롯해 위생과 보건을 적극 개선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만일 우리를 교육을 잘하여 의복 음식 거처를 학문이 있게 하거드면 동양 중에 제일 가는 인종이 될 터이니⋯ 중략⋯ 백성이 병 아니 나도록 정부에서 하시는 것이 곧 백성에게 은혜를 끼치는 것이니 백성 병 안 나도록 하기는 정한 물을 먹게 하는 게 제일이라 지금 서울 속에 있는 우물 물을 분석을 하여 보거드면 그물이 물이 아니라 거름을 걸은 것이니 이런 물을 먹는 까닭에 여름이면 설사로 하여금 죽는 사람이 많이 있고 열병과 학질이 많이 다니니 (1896년 5월 2일)
1896년 5월 19일 자에는 인민의 건강에 대하여, 이를 유지·증진하기 위한 구체적 실천 항목으로 운동, 목욕, 가정 내 청결 유지, 음식 조리의 위생 등을 핵심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특히 음용수와 채소는 반드시 끓여 섭취해야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우물물에는 박테리아가 존재하므로 이를 그대로 마시는 것은 매우 위험하며, 질병의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인민의 건강은 국가 발전의 기초가 되는 요소이므로, 이러한 위생 관념과 실천은 모든 백성이 일상에서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할 과제로 권고되고 있다.
일기가 차차 더워 오기에 백성들이 병 안 나기를 위하여 요긴한 말을 조금 하노라 집에 병이 없으려면 정한 것이 제일이니 그 정한 일은 곧 선약 보다 낳은 것이라 정하게 하는 것은 돈 과히 드는 일도 아니고 저만 사람이 부지런 하면 가난한 사람도 부자와 같이 할 터이니 조금 부지런만 하면 자기의 몸에 병만 없을 뿐 아니라 집안 식구가 병이 다 없을 터이요⋯ 중략⋯ 그 담에 제일 소중한 일은 먹는 물이니 서울 안에 있는 우물이란 것은 곧 사람 잡는 더시라 우물에서 나는 물은 대개 개천물 거른 것이니 겨울에는 위태하기가 덜 하거니와 날이 더워지면 그물 속에 각색 생물이 있는데 그 생물은 서양 말로 박테리아라 하는 것이라 이 물건이 사람의 속에 들어가 각색 병을 모두 만드는데 눈으로는 기계 없이는 볼 수 없으나 그 박테리아가 괴질과 열병과 학질과 이질과 다른 속병들을 만드니 이 생물을 제어 하기는 정한 것이 제일이요 음식과 물은 끄리면 이 생물들이 죽을 터인즉 우물에서 온 물과 푸성귀를 기여히 끄리든지 삼든지 한 후에 먹으면 집안에 병이 없어지리라. (1896년 5월 19일)
1896년 6월 27일 자에서는 인민의 건강 보호와 여름철 질병 예방을 위한 시급한 조치로 개천의 정비, 위생에 대한 체계적 지도, 음식물에 대한 철저한 검열, 그리고 공중목욕탕의 설치 등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이는 국가가 인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전하기 위해 위생 행정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함을 강조하는 한편, 공공 보건 의식의 함양과 제도적 정비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전에도 말 하였거니와 만일 내부 위생국과 경무청에서 백성의 위생을 생각하지 안 하고 병이 날 것을 지금 방비치 안 하면 올 여름에 불쌍한 백성들이 몇 백명일는지 또 죽을 터이니 우리가 한 말을 삼가 듣고 첫째는 개천들을 정히 치게 하고 둘째는 길 가에 대소변을 못 보게 하고 셋째는 물을 끄려 먹으라고 방들을 부치고 넷째는 푸성귀를 개천 물에서 못 씻게 하고 다섯째는 길 가에서 밤에 누워 잠자지 못 하게 하고 여섯째는 아이들이 벌거 벗고 못 다니게 하고 일곱째는 술집에 사람들이 모여 술과 푸성귀를 먹고 좁은 데에 서로 끼어 앉아 호흡을 서로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하고 여덟째는 위생국에서 도성 안 몃 군데 큰 목욕 집을 만들어 가난한 인민이 와서 목욕하게 하고 아홉째는 경무청에서 각 반찬 가게와 관에 다니면서 상한 고기와 생선을 못 팔게 하며 열째는 순검들이 길로 밤낮 돌려 순행하게 하여 집 앞에 더러운 물건이 있든지 개천을 치지 안 한 백성이 있으면 그 주인을 불러 치거하게 하고 이 규칙들을 사람마다 행하는지 순검들이 순행 하며 살피게 하고 만일 규칙에 짐짓 범하는 자 있으면 엄히 다스리는 것이 백성을 위 하는 근본 (1896년 6월 27일)
1896년 7월 18일 자에서는 정부가 공공 위생의 보호와 도시 환경의 정비를 위하여 다섯 가지 분야에 걸친 규칙을 공포하였음을 알리고 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부패한 식품의 유통, 가축의 과속 주행, 노숙 행위 등을 금지하여 도시 질서와 생활 안전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둘째, 각 가구는 자신의 대문 앞과 담장 인근 도로에 대해 청소 및 정비의 책임을 지도록 하여 주민 자율의 위생 관리를 유도하였다. 셋째, 노점 설치, 좌판 운영, 물건 적치 등 도로의 원활한 통행을 방해하는 모든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였다. 넷째, 길가의 배설물 방치, 쓰레기 버리기, 동물 사체 유기 등 비위생적 행위에 대해 명확히 금지 조항을 규정하였다. 마지막으로, 출생·사망·이사·건축 등의 민원성 행위는 반드시 관할 순검소에 신고하고 허가를 받도록 하여 행정적 통제를 강화하였다. 이러한 규칙의 제정은 위생과 질서 유지를 국가 차원에서 제도화하려는 시도로, 조선 사회의 근대적 도시 행정 및 공공의식 형성에 기초를 마련하고자 한 조치로 볼 수 있다.
1896년 12월 12일 자에서는 조선인이 문명국 인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신체 습관과 위생 의식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근대적 시민 품격의 형성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입으로 숨을 쉬는 습관은 건강을 해칠 뿐 아니라 외관상으로도 매우 어리석어 보이는 행동으로 지적되며, 반드시 코로 호흡하는 것이 옳다고 강조한다. 또한 손으로 코를 푸거나 옷소매에 코를 푸는 행위는 세계적으로 비천하고 무례한 행동으로 간주하므로, 손수건을 항시 휴대하여 사용하는 것이 문명인의 태도임을 일러 준다. 아울러 목욕, 머리 감기, 양치질, 실내 환기, 규칙적인 운동 등 청결과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일상적 실천은 단순한 개인위생 차원을 넘어, 문명사회의 일원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 소양으로 강조된다. 논설은 마지막으로, 맹목적으로 타인을 따라 하는 피동적 습관을 버리고, 이성적 판단과 실천에 기초한 자율적 생활 태도를 확립할 것을 촉구하며, 이를 통해 조선인이 문명국 인민으로서의 품격을 갖추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1897년 9월 2일 자에서는 물의 중요성을 음식보다도 더 근본적인 생명 유지 요소로 강조하며, 문명국일수록 풍부하고 청결한 물을 사용하는 것이 곧 건강, 위생, 사고력과 직결된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논설은 조선의 물 사정이 극히 열악하다고 진단하며, 서울 지역의 우물 중 99%가 개천과 연결되어 있어 오염된 물을 그대로 마시는 실정임을 지적한다. 이러한 환경은 조선 백성의 신체적 건강을 해치는 것은 물론, 위생 의식의 결핍과 비합리적인 생활 습관을 고착화시키는 주요 원인이 된다고 본다. 더 나아가 조선 사람들 다수가 자신의 몸이 불결하다는 인식조차 두지 못하고 있으며, 이를 개선하려는 의지 또한 매우 부족하다는 현실을 비판한다. 이에 따라 정부가 직접 개입하여 우물 정비를 시행하고, 오염된 물의 사용을 규제함으로써 백성들이 강제적으로라도 깨끗한 물을 마시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논설에서는 정결한 물을 마시는 습관이 형성되면, 자연스럽게 신체가 건강해지고 사고와 위생 의식도 맑아질 것이며, 이는 곧 인민 계몽의 출발점이 된다고 본다. 비록 초기에는 불만이나 저항이 따를 수 있으나, 정부는 이를 감수하고서라도 반드시 이 사업을 주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의지를 강하게 천명하고 있다.
3. 종교 및 무속신앙
1896년 5월 7일 자에는 인민에 대한 교육의 부재로 인해 무속 신앙이 사회 전반에 만연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상당한 폐해와 재정적 낭비가 초래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불필요한 지출을 억제하여 교육과 의료와 같은 공익적이고 발전적인 분야에 활용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사람이란 것은 학문이 없을 수록 허한 것을 믿고 이치 없는 일을 바라는 것이라 그런고로 무당과 판수와 선앙당과 풍수와 중과 각색 이런 무리들이 백성을 속이고 돈을 뺏으며⋯ 중략⋯ 둘째는 악귀를 대접할 양으로 재물을 많이 버리니 그 재물을 가지고 가난한 사람을 구제 한다든지 병원을 지어 병든 사람을 치료한다든지 학교를 지어 사람을 교육 한다든지 그러치 안 하면 그 재물을 가지고 장사를 하여 국 중에 돈이 많이 들어 오게 한다든지 제조소를 배설하여 각색 물건을 조선서 만들던지 묵은 땅을 개척하여 곡식과 실과를 기른다든지 길을 닦아 인마가 통로 하기가 편리하고 사는 동리가 정하여 백성이 병이 안 나게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어늘 (1896년 5월 7일)
1896년 8월 20일/1897년 6월 5일 자에서는 기독교에 대해 매우 긍정적이고 수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이를 통해 독립신문이 새로운 종교에 대해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관점을 지니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논설은 ‘조선에 주재하고 있는 기독교 선교사들이 단지 종교 전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조선 백성의 문명화와 계몽을 위한 순수한 목적 아래 활동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이들은 조국과 가족을 떠나 낯설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헌신적으로 교육, 의료, 출판 등의 영역에서 조선인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이는 일종의 인류애적 실천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에 따라 조선인은 선교사들의 이러한 진정성과 희생을 올바로 이해하고 감사하는 태도를 가져야 하며, 기독교가 지닌 사랑과 자비의 정신 곧 이타적 가치를 본질적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예수교와 같이 이타적 실천을 강조하는 종교는 보기 드물며, 기독교야말로 인간 존엄성과 공동체적 연대의 가치를 구현하는 종교임을 강조하고 있다.
1897년 1월 7일 자에서는 무속신앙의 폐해를 조목조목 지적하며, 이를 근절하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당시 서울 시민들은 무당과 판수에게 매년 약 18만 원에 달하는 금액을 지출하고 있으며, 이는 인당 약 90전에 해당하는 액수로, 막대한 사회적 낭비임을 지적한다.
논설은 만약 이 재원을 공공복지에 사용한다면 도로 정비, 가로등 설치, 학교와 병원 설립, 상수도 확충, 농업·공업 진흥 등 국가 기반 시설의 확충과 인민 생활 향상에 실질적인 이바지를 할 수 있음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무당과 판수에 대한 맹신은 이성에 반하는 비합리적 태도이며, 사회적 효율성과 인민 계몽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정부가 법률로 미신 행위를 전면 금지할 경우, 약 450만 냥에 달하는 경제적 손실을 절감할 수 있으며, 이는 곧 백성 전체에게 실질적인 혜택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무당과 판수의 생계 문제가 제기될 수 있으나, 논설은 국가 정책은 특정 집단의 이해보다 다수 인민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한다.
결론적으로 정부는 미신 행위를 신속히 법률로 금지하고, 이를 통해 백성의 의식을 계몽하며, 국가의 위신을 제고하고 공공질서를 확립하는 데 힘써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종교적 문제를 넘어 근대국가로의 전환을 위한 제도적 정비의 하나로 제시된다.
1897년 9월 14일 자에서는 굿, 고사, 불공 등과 같은 미신적 행위가 아무런 실효도 없을 뿐 아니라, 단지 재물만 낭비하게 만드는 허망한 관습임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논설은 지식인 계층이 앞장서서 이러한 미신 행위를 중단하고, 그것이 백성에게 어떠한 실질적 이익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여전히 학문이 부족하고 의식이 낮은 부녀자들 사이에서는 미신에 대한 집착이 심하게 남아 있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특히 과거 판수로 활동하던 인물이 스스로 잘못을 반성하고, 미신이 얼마나 허황하고 해로운 것인지에 관해 증언한 사례를 소개하며, 이른바 ‘조작된 굿판’이 물리적 충돌과 법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미신이 사회적으로도 중대한 위험 요소임을 보여준다.
결국 논설은 판수와 무당의 존재가 인민 계몽과 국가 문명화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이들을 전국적으로 근절하고 백성 스스로가 깨어나야만 진정한 국가적 번영과 복이 찾아올 수 있음을 역설한다. 이는 곧, 미신 타파를 통해 합리성과 계몽의 기초를 확립하려는 시대적 과제를 반영하는 강력한 담론이라 할 수 있다.
지금 세상 일을 보건대 이러한 허무한 일이 무수 하니 소위 판수놈과 무당년은 일병 곧 없애야 이 같은 변괴가 다시 있지 않겠고 우리 나라가 속히 문명 진보 할 터이니 원컨대 서울과 평양과 기외 각 도 각 군에 있는 판수와 무당들을 다 없앨 뿐만 아니라 온 나라 인민들은 이런 일을 알고 곧 깨닫는 것이 천지 간에 큰 복을 받는 것이라 하노라. (1897년 9월 14일)
4. 경제
1896년 5월 9일 자에는 ‘나라가 개화하고 부강해지려면 먼저 길(도로)을 닦아야 한다. 길을 깨끗하고 편리하게 정비하는 것이 백성이 살기 좋게 하고 경제를 살리며 국가를 강하게 만드는 기본이다.’라고 서술하고 있으며, 이는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가 근대적 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가장 근본적으로 수행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
남의 나라는 사람이 셋만 모아서 한 동리에 살아도 첫째 하는 일이 치도를 하는 법인데 그 이는 무엇인고 하니 길이 좋거드면 동리가 정하게 되니 인민이 병이 적게 날 터이요 길이 평평하면 사람과 우마가 쉽게 다닐 터이니 물건 운전 하기가 힘이 덜 드는지라 힘히 덜 든즉 태가가 적어지니 물가도 적어질지라 물가가 적으면 사는 사람이 더 있는 법이니 물건을 많이 판즉 장사 하는 사람에게 이가 더 있는 법이요 우선 물가가 싼즉 가난 한 백성이 살기가 나흘 터이요⋯ 중략⋯ 개화한 나라가 되려면 치도 부터 하는 것이 옳으니 조선도 경향간에 길을 먼저 닦아야 할 터인데 남의 나라 모양으로 아직 돈을 많이 들여 상등 길을 만들 수는 없으나 길이 넓게나 하고 정 하게나 하며 개천이나 정히 처 더러운 물건이 씻겨 가게 하고 길 가운데 집이나 짓지 말며 대소변이나 길에서 누지 못하게 하고 더러운 물건을 길에 내버리지 못하게 (1896년 5월 9일)
1896년 4월 28일 자에서는 돈이란 건 정부가 백성을 위해, 무역과 매매를 편리하게 하려고 찍는 것인데, 잘못 만들면 오히려 인민이 무거운 돈을 들고 다녀야 하고 거래 비용이 커져서 경제가 불편해지며, 서양이나 일본은 금·은화를 담보로 지폐를 발행해 인민이 편리하게 쓴다.라고 서술하며, 이는 곧 경제적 부흥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는 근대적 경제 체제와 시스템을 확립하기 위한 교육의 필요성을 설파하는 가르침으로 해석될 수 있다.
첫째는 무거우니 운전하기 어렵고 둘째는 돈 세기가 어려운즉 바쁜 장사하는 사람이 하루를 가져야 천 냥 가량을 겨우 셀 터이니 천 냥이라야 겨우 사십 원이니 만일 장사가 흥왕하고 백성이 부요하게 되면 한 사람이 하루 백원 어치 거래가 있을 지경이면 이틀 반은 가져야 그 돈을 셀 터인즉 그런 우순 일이 어디 있으리요. (1896년 4월 28일)
1896년 5월 13일 자에서는 외국인이 조선 백성의 주택을 담보로 삼아 과도한 이자를 취하고, 나아가 재산까지 수탈하는 전당 악습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폐단이 발생하는 근본적 원인은 조선 백성의 무지와 금융 지식의 결핍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하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 조선 정부는 금융 거래에 있어 이자율을 법적으로 규제하고, 외국인의 전당 행위 자체를 금지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근일에 들으니 서울과 인천서 조선 백성들이 돈이 없으면 외국 사람에게 가서 집을 전당 잡히고 돈을 얻어 쓰고 변리를 한 달에 한 돈 변식 주고 쓴다니 세상에 이런 중변 주는 나라는 조선 밖에 없고 이런 중변 받는 사람도 조선 와 있는 외국 전당국 밖에는 없는지라 사람이 돈에 몰려 남에게 빚을 얻어 쓰려고 할 때 사세가 급하기에 한 것이니 그 사람이야 후일 생각은 아니 하고 다만 우선 돈 얻어 쓸 생각만 있어 변리는 달라는 대로 주고 돈을 얻어 쓴즉 몇 달이 못 되어 길미가 본전 보다 더 하게 되니 세계에 이런 무리하고 야만에 풍속은 다시 없는지라. (1896년 5월 14일)
길미가 높은 것은 전당이 없고 아직 갚을 도리가 없는 사람에게는 자연이 전당 있는 사람 보다 높으려니와 전당을 준 후에는 돈 빌린 사람이 자기 돈 일어 버릴 염려가 없은즉 자연이 변리가 가벼워야 할지라 사람의 집을 잡고 돈을 빌릴 때에는 그 돈 일어 버릴 묘리는 조금도 없은즉 매 삭에 한 돈 변식 받고 돈 취해 주는 것은 곧 불쌍하고 가난 한 사람의 집을 도적질 하는 것이니 (1896년 5월 14일)
1897년 5월 27일 자에서는 조선의 해양 자원을 새로운 산업의 중심으로 제시하며, 이를 국가 부강의 핵심 기반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논설에 따르면 조선의 바다는 광산보다도 더 뛰어난 가치를 지닌 재생 가능한 자원이 풍부하게 분포되어 있으나, 조선인은 배의 부족, 어업 기술의 미비, 지식의 결핍, 유통 기반 시설의 부재 등으로 인해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외국 어선들은 조선의 연해에서 막대한 이익을 거두고 있으며, 이에 비해 조선은 여전히 소극적이고 비체계적인 어로 행위에 머무르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에 따라 해양 산업을 국가 전략 산업으로 설정하고, 배와 기계의 확보, 어업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의 보급, 수출을 위한 유통 기반 시설의 구축 등 체계적인 기반을 갖춘 어업 체계를 즉시 시작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또한 정부는 이 분야에서 선도적으로 활동하려는 인물과 민간의 시도를 제도적으로 보호하고 적극 장려해야 하며, 동시에 백성들에게도 새로운 생계 기반을 제공함으로써 국가적 차원의 산업 전환을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해양 산업의 육성은 단순한 경제 활성화 차원을 넘어, 조선을 다시 부강한 자주국으로 재건하는 데 있어 필수적이고 전략적인 기반이 될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5. 인권(페미니즘)
1896년 4월 21일 자에서는 여성의 인권적 가치를 중시해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며, 남성이 무지함으로써 여성을 경시하고, 혼인 이후에도 첩을 두어 여성을 기만하는 왜곡된 풍습을 예리하게 비판하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폐습을 근본적으로 혁신하기 위해서는 여성 교육이 필수적임을 역설하며, 여성 교육의 당위성과 중요성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조선 사나이가 여편네 대접하는 것을 보거드면 정도 없고 의도 없고 예도 없고 참 사랑하는 마음도 없이 대접하기를 사나이 보다 천한 사람으로 하고 무리하게 압제하는 풍속과 억지와 위엄으로 행하는 일이 많이 있으니 그 여편네들을 대하여 어찌 불쌍하고 분한 마음이 없사리요⋯ 중략⋯ 무리한 사나이들이 풍속 만들기를 저희는 음행하며 장가든 후 첩을 두어도 부끄러움이 없고 자기 아내는 음행이 있든지 간부가 있으면 대변으로 아니 그런 고르지 못한 일이 어찌 있으리요⋯ 중략⋯ 아내가 죽으면 후취 하는 것은 저희들이 옳은 법으로 작정하였고 서방이 죽으면 개가하여 가는 것은 천히 여기니 그것은 무슨 의린지 모를러라 가는 한 여편네가 소년에 과부가 되면 개가 하여도 무방하고 사나이도 소년에 상처하면 후취 하는 것이 마땅 하니라 조선 부인네들도 차차 학문이 높아지고 지식이 널러지면 부인의 권리가 사나이 귄리와 같은 줄을 알고 무리한 사나이들을 제어하는 방법을 알리라. (1896년 4월 21일)
1896년 6월 6일 자에서는 조선의 전통적 결혼 풍속은 남녀가 서로를 알지 못한 채, 어린 나이에 강제적으로 혼인하는 형태를 띠고 있으며, 이는 참된 부부관계의 형성을 방해할 뿐 아니라 심각한 사회적 해악의 근원이 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부부는 일생을 함께하는 동반자로서, 사랑과 존중, 상호 이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한 관계를 형성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자율적 교제와 상호 선택의 자유가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며, 유아기 혼인 제도는 개인의 행복을 저해할 뿐 아니라, 국가 전체의 인구 건강과 사회 구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즉각 폐지되어야 할 악습으로 지적된다. 결혼은 일정한 경제적 능력과 책임감을 갖춘 성인이 자발적으로 선택해야 할 문제이며, 정부는 이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지원함으로써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 질서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래 논설에서도 볼 수 있듯이 중첩제에 대해서도 예리한 비판을 가하고 있으며, 이는 여성의 시각에 치우치지 않고 남성과 여성 모두를 향한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남성이 첩을 두는 행위는 본처에 대한 명백한 배신일 뿐 아니라, 사회적·도덕적 측면에서도 중대한 문제로 간주한다. 이러한 행위는 가정 내 불화를 초래하고, 궁극적으로는 국가의 안정과 번영을 저해하는 원인이 되며, 첩 제도는 바로 그 가정 파탄의 핵심적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따라서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정절과 책임의식을 요구하며, 첩을 두거나 첩이 되는 행위는 인간 품격을 가장 저열하게 만드는 비천한 행위로 규정되고 있다.
조금치라도 낮게 되어 돈 푼이나 생기거드면 그 돈을 가지고 같이 고생 하던 아내하고 즐겁게 지내는 것이 인정에도 마땅 하고 의리 상에도 옳늘 돈 곧 생기거드면 같이 고생하던 아내는 잊어 버리고 모르던 계집을 얻어 그 돈을 가지고 같이 쓰고 그 아내는 그저 고생만 할 뿐...중략...편이 다른 계집은 없었거니와 주야로 남편이 잘되기를 바라다가 조금 낮게 된 후에는 같이 고생 하던 사람은 둘째가 되고 딴 계집이 들어와 남편의 사랑 함과 남편의 돈을 받아 쓰니 어찌 원통한 마음이 없으며 말은 아니 하더라도 도로 잘 된 것을 후회 할 마음이 없으리요⋯ 중략⋯ 우리 생각에는 계집이 되어 남의 첩이 된다든지 남의 사나이를 음행에 범 하게 하는 인생들은 다만 이 세상에만 천 할 뿐 아니라 후생에 그 사나이와 같이 지옥에 갈 터이요. (1896년 6월 16일)
1898년 2월 12일 자에서는 혼인을 단순한 개인적 사안으로 보지 않고, 사회 전체와 인종의 존망에 직결되는 중대한 문제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혼인이 개인의 삶을 넘어 국가의 미래와 문명 수준을 결정짓는 제도적 핵심이라는 관점을 전제로 한다.
논설은 외국에서는 혼인을 법률로 엄격히 규제하며, 남자 21세, 여자 19세 이상의 적정 혼인 나이를 명시하고, 당사자의 자유의사와 생계유지 능력을 결혼의 필수 조건으로 삼고 있음을 소개한다. 생계를 책임질 능력이 없는 자에게는 혼인을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사회적 부담과 가정의 파탄을 미리 방지하고 있어야 한다. 이에 비해 조선은 아직도 어린아이들이 부모나 제삼자의 강요 때문에 혼인을 강제당하고 있으며, 이는 자율성과 판단력이 모자란 상태에서 이뤄지는 불합리한 관습임을 지적한다. 미성년기의 혼인은 신체와 정신 모두에 악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인종적 열화와 사회적 퇴행을 초래하는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또한 무분별한 결혼은 오히려 가난과 무능의 악순환을 심화시키며, 무능한 남편은 아내를 고생시키고, 이는 도덕적 타락과 범죄 증가로 이어진다고 경고한다. 이러한 연쇄적 폐단을 막기 위해서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결혼 연령과 자격을 법률로 규정하고, 지방관이 혼인 전 당사자의 의사와 상황을 자세히 조사한 뒤 허가하는 방식으로 제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시 조선 사회에는 부부간 불화, 여성의 첩화, 음행 등 가정과 윤리를 훼손하는 병폐가 만연해 있었으며, 이는 궁극적으로 국가 전체의 안정과 명예를 훼손하는 근본 원인으로 지적된다. 인민 개개인의 가정이 평화로워야 국가도 평화로울 수 있으며, 도덕과 예절이 사회 전반에 깊이 스며들 때 비로소 조선은 문명국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역설한다.
결론적으로, 정부가 혼인 제도 개혁을 시급히 추진하여, 조선의 도덕적 기반과 사회 질서를 바로 세울 것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울고 은근히 서러움을 이기지 못 하는 여인이 여간 백여 명이 아니요 남의 첩이 되어 세상에 천대 받고 남의 집안에 불화한 경색을 일으키며 계집의 등분을 낫취는 계집이 여간 백여 명이 아니며 내외 불합한 까닭에 음행이 성 하며 손톱과 발톱이 닳도토록 일 하여 돈푼 벌어 아무 것도 아니 하고 가만히 자빠져 있는 서방을 먹여 살리는 여인이 한 둘이 아니며 개와 돼지 같이 천 하고 이다음에 지옥 불에서 타 죽을 못된 사나이 놈들이 제 계집을 무단히 때려 종 같이 부리는 놈이 한 둘이 아니라 국주에 이런 경황이 있고야 그 나라가 어찌 복음과 천은을 입으리요 백성의 집들이 화평 하여야 그 나라가 화평 하는 법이며 전국 인민의 행실이 음한 것이 없어야 그 나라 정사가 맑아 지는 법이요 전국 남녀가 경계와 도리를 가지고 교제 하여야 그 나라가 세계 각국에 경계와 예절이 있게 교제가 되는 법이요. (1898년 2월 12일)
1896년 8월 25일 자에서는 경찰 행정을 담당하는 경무청의 불합리하고 구시대적인 관행에 대해 비판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인민은 국가 권력이 자의적으로 행사되어서는 안 되며, 모든 사안은 법률에 따라 처리되어야 함을 인식하게 되며, 나아가 스스로 인권의 주체임을 자각하게 되는 계기를 갖게 된다.
논설은 경무청의 본질적 기능이 백성을 처벌하기 위한 기관이 아니라, 보호하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법률에 따라 정해진 형벌 외에 기아, 질병, 한기 등 추가적인 고통을 가하는 행위는 위법이며, 이에 대한 책임은 정부와 감옥 담당자에게 있다고 명확히 지적한다. 아울러 재판소와 경무청은 백성으로부터 두려움이 아닌 신뢰를 받는 존재가 되어야 하며, 무죄인 사람도 거리낌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친구 같은 제도’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당시 조선 사회에서 경무청을 여전히 구시대 포청과 동일시하고 있었으나, 양자는 목적과 제도적 성격 면에서 전혀 다름을 강조한다. 경무청은 특정 계층을 위한 기구가 아니라, 법률에 따라 공정하게 전국 인민 모두를 대상으로 작동해야 하는 제도로 제시되고 있다. 개화란 곧 전국 인민이 신분이나 계층에 상관없이 차별 없이 공평한 정부의 혜택을 받는 것이며, 이러한 보편적 평등이야말로 문명화의 근간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6. 역사적 상황 다시 보기
이번 장에서는 독립신문 논설 가운데, 시대적 흐름 속에서 다소 간과되었으나 오늘날의 시점에서 재조명할 필요가 있는 내용들을 중심으로 그 함의와 의의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1896년 4월 18일 자 논설에서는 일본의 청일전쟁 승리를 환영하며, 그로 인해 조선이 독립을 이루었다는 점에 대해 감사의 뜻을 표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서술은 독립을 외부 세력의 힘으로 ‘부여된 결과’로 인식하게 하며, 조선 민중 스스로 주체적 투쟁과 희생의 역사를 지우는 심각한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
독립은 외부에 의해 주어진 결과가 아니라,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역사적 산물이며, 그러한 항일 투쟁의 흐름 속에서 카이로 선언에 이르러 장제스가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을 지지하게 된 것이 핵심적 전개라 할 수 있다(배영대, 2019). 따라서 본 논설이 보여주는 관점은 독립의 본질을 외면하고, 외세 의존적 사고를 정당화할 수 있는 왜곡된 가치관을 내면화하게 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는 독립의 의미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며, 후대에 대한 역사 교육과 민족의식 형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적 재조명이 필요하다.
일본서 두 해 전에 청국과 싸워 이긴 후에 조선이 분명한 독립국이 되었으니 그것 조선 인민이 일본을 대하여 감사한 마음이 있을 터이나 조선 인민 중에 일본을 감사히 생각하는 사람이 지금 없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조선에 온 일본 사람 중에 큰 형세는 생각하지 못 하고 당장 조고마한 이만 취하여 조선 사람을 박대한 일도 많이 있고 (1896년 4월 18일)
1896년 4월 23일 자에서는 민비 시해와 고종의 아관파천과 같은 중대한 역사적 사건을 모두 인민의 부덕함에서 기인한 것으로 단정하는 서술로서, 이러한 관점은 정확한 시대적 진단과 건전한 계몽적 방향 제시에 이르렀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군주 폐하께서 환어하심이 급한 일이나 이삼 년 동안에 조선 신민들이 변변치 못하여 대궐 안에 변이 자주 나서 살육이 많이 생겼고 심지어 왕후 폐하까지 피희하셨으니 어찌 대군주 폐하께서 놀래시지 안 하시리요 만일 조선 군사와 신하들이 남의 나라 군사와 신하같이 죽더라도 임금을 위하는 마음이 있으면 이런 변이 아니 낫슬 터이지마는 (1896년 4월 23일)
Ⅴ. 결론 및 제언
최근 급변하는 경영환경 속에서 인적자원개발의 양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현대 사회체제는 점차 전문화·특수화·조직화되어 가고 있으며, 이러한 구조 속에서 형식적 교육을 통해 역량을 향상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스스로 주도하여 역량을 지속적으로 계발해 나가는 평생학습의 자세가 필수적으로 요구되고 있다(권대봉, 2002). 그런 관점에서 성인교육이란, 집단행동을 대상으로 사회 변화를 연구하기 위한 연구자가 집단행동에서 학습자가 되고, 그 학습자가 다시 집단행동에 필요한 방법을 가르치는 교수자가 되는 과정, 즉 집단행동의 연구자가 집단행동의 주도자로 되는 과정을 뜻하는 참여 연구 방법과 같은 것으로서 궁극적으로는 사회 변화의 방법을 뜻한다(홍유희, 2013)
독립신문 논설을 유네스코에서 추구하는 4가지 원리에 근거하여 풀어보고자 한다. 유네스코 평생교육 4개 원리는 알기 위한 학습, 행동하기 위한 학습, 더불어 살기 위한 학습, 존재하기 위한 학습이다. 이는 알기 위한 학습을 통해서는 이해할 수 있는 도구를 가지게 된다. 행동하기 위한 학습을 통해서 자기의 현재 환경에 대해 새롭게 창조하고 대응할 수 있다. 함께하기 위한 학습을 통해서 다른 공동체 구성원들과의 인간 활동에 참여하고 협력한다. 존재하기 위한 학습은 앞의 세가지 학습을 기반으로 하여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을 찾아간다(윤여각, 2015). 이를 풀이한다면 학습자가 앎으로 인해 행동하게 하고 그 행동으로 우리가 함께 더불어 살게 하는 교육이 이루어진다. 이로써 나 자신과 우리가 함께하는 사회가 되고 그 속에서 나 자신을 찾는 학습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독립신문 논설에는 당시 인민이 알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알기 위한 학습을 실현하였다고 본 연구자는 보았다. 독립신문의 논설은 인민 계몽에서 출발하여, 교육·사회·경제·정치 등 사회 전반의 문제를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개혁적 비전을 제시하는 일련의 담론적 흐름을 구성하고 있으며, 독립신문 논설이 전달하고자 했던 평생교육 내용은 아래와 같다.
첫째, 독립신문은 단순한 지식의 전달이나 정보의 확산에 그치지 않고, 경제·의료·위생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실질적인 공중 교육(public education)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특히 국가가 아직 제도적으로 마련하지 못한 위생 규범을 자발적으로 제정하거나 이를 대중에게 적극 배포함으로써, 새로운 정책 방향과 실행 방안을 선제적으로 정부에 제안하는 사례도 다수 존재한다. 잘못된 사회 시스템과 정부의 무능을 비판하면서도, 단순한 문제 제기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이고 실현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담론적 실천성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둘째, 논설은 사회 전반의 행정 체계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함께, 구체적 정책 제안과 행정 개혁 방향까지 제시하며, 당시 독립 정부가 나아가야 할 길을 능동적으로 모색하였다. 이를 통해 독립신문은 독자들로 하여금 수동적 사고에서 벗어나 사회 제도와 행정 구조를 주체적으로 인식하고 사유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였으며, 이는 시민 의식의 고양과 주체적 참여의 기반을 마련하는 계몽적 기능으로 작용하였다.
셋째, 독립신문의 논설은 국민의 건강, 생활 위생, 교육 제도, 법률 개정, 국제 관계, 외교 자주성, 도로 정비, 도시 재건축, 동물 보호, 격언과 금언에 이르기까지 매우 폭넓은 분야에 걸쳐 사회적 진단과 제언을 제시하고 있다. 예컨대, 1896년 9월 12일 자 논설에서는 청국인이 조선인에게 부당하게 세금을 징수하는 사례를 들어, 이는 조약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며, 조선의 주권을 침해하는 중대한 사안이라고 지적한다. 정부는 이에 강력히 대응해야 하며, 이를 방기한 관료들의 직무 태만 역시 심각한 문제로 비판된다. 이는 외교력과 행정 주체성을 강화해야 함을 역설하며, 자주 독립국으로서의 위상을 지켜내기 위한 실천적 과제를 제시한 것이다. 대표적인 알기 위한 학습을 실천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넷째, 독립신문은 자주 독립국 형성의 필수 조건으로서 ‘교육’을 일관되게 강조하였다. 이는 곧 인민의 무지를 깨우고, 옳고 그름을 스스로 분별하는 능력을 함양함으로써 내부의 화합과 단결을 이끌고, 나아가 외세에 대한 자각과 저항 의식을 고취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이 같은 계몽의식은 미신 타파, 위생 개선, 여성 인권 고취, 법률 인식 강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구체적으로 구현되었다. 예컨대, 조선인들이 자신의 불결함을 인지하지 못하는 현실을 비판하며, 그 원인을 무지에서 찾고, 이를 타개하는 방법으로 정부 주도의 위생 교육과 강제적 위생 정책 시행을 주장한 바 있다. 이는 단지 위생 개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각 없는 민중을 계몽하여 문명국의 시민으로 길러내고자 했던 독립신문의 일관된 기획이자, 계몽 저널리즘의 실천적 표본으로 평가할 수 있다.
독립신문의 논설에서 알 수 있는 평생교육의 의미는 조선 후기 근대화의 필요성과 함께 등장한 계몽주의 담론과 밀접하게 연결되며, 평생교육의 본질적 목표를 자각한 시민의 형성, 도덕적 실천력의 함양, 그리고 공동체적 책임의 내면화로 제시한다. 이는 단순한 지식의 전달을 넘어, 인격과 실천이 결합한 주체의 양성을 지향하는 평생교육의 핵심적 가치들과 상응한다. 독립신문의 논설은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뚜렷한 평생교육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 주체적 시민 형성을 위한 교육이다. 독립신문 논설은 백성을 국가의 통치 대상이 아닌 주체적 ‘신민’으로 재정립하려 하였다. 논설에서는 “법을 지키는 것이 충신이며, 지키지 않는 것이 역적이다”(1896.4.11)라고 하며, 법치에 근거한 시민적 자각을 요구하였다. 이는 성인이 기존의 종속적 위치를 벗어나 자율성과 책임 의식을 갖춘 주체로서 성장해야 한다는 교육사상을 전제한다. 이러한 주체 형성은 독립신문이 일관되게 주장한 계몽의 핵심 축이다.
둘째, 독립신문 논설은 지식 습득만으로는 교육이 완성될 수 없다고 보았다. “옳고 그름을 아는 것”에 더해 “그대로 행할 힘을 얻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1897.9.16). 이는 평생교육이 인지적 계몽에만 머무르지 않고, 도덕적 판단과 실천력을 결합해야 한다는 사상을 보여준다. 특히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위생 습관, 법의식, 타인에 대한 배려 등은 교육을 통해 형성될 수 있는 도덕적 기초로 보았다.
그렇지만 인민 계몽의 궁극적 목적을 개인의 행복과 안녕이 아니라 국가의 부강과 부국강병에만 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뚜렷한 한계와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으며, 경제, 정치, 교육(사회교육, 인문교육, 문해교육 등), 사상, 이념, 정부 행정, 인권(특히 여성 인권) 등 매우 광범위한 주제와 분야를 포괄하고 있다. 이러한 주제의 방대함은 계몽적 의도와 실천의 폭을 넓히는 데 이바지하였으나, 그로 인해 일부 영역에서는 심층적이고 철저한 성찰에 도달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특히 성별에 따른 평등에 대해서는 비교적 분명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으나, 여성 내부의 계층 간 불평등, 즉 상류층 여성과 하층 여성 간의 사회적 격차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으며, 오히려 기존의 신분 질서와 관습적 불평등을 암묵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나타난다. 이는 당시 계몽 담론의 한계이자, 근대적 평등 개념의 불균형적 수용을 보여주는 단면이라 할 수 있다(이나미, 2017)는 의견도 함께 제시할 수 있다.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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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속: 아주대학교 대학원 교육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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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분야: 평생교육, 성인교육, HRD
소 속: 아주대학교 대학원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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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분야: 자아초월, HRD, 평생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