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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Lifelong Learning Society

ISSN : 1738-0057 (Print) / 2671-8332 (Online)

Journal of Lifelong Learning Society - Vol. 22, No. 2

[ Article ]
Journal of Lifelong Learning Society - Vol. 22, No. 2, pp. 1-32
Abbreviation: JLLS
ISSN: 1738-0057 (Print) 2671-8332 (Online)
Print publication date 31 May 2026
Received 30 Mar 2026 Revised 20 Apr 2026 Accepted 04 May 2026
DOI: https://doi.org/10.26857/JLLS.2026.5.22.2.1

‘주체없는 학습’의 존재론: 스마트 시티와 평생학습도시의 학습 어셈블리지를 중심으로
최근정
서울대학교

The Ontology of “Learning Without a Subject”: Focusing on Learning as Assemblage in Smart Cities and Lifelong Learning Cities
Kunjung Choi
Seoul National University
Funding Information ▼

초록

본 연구는 학습을 개별 주체의 인지적 전유 과정이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물질, 데이터, 알고리즘)이 평평하게 얽혀 발생하는 존재론적 변환 그 자체로 정의한다. 이를 위해 들뢰즈, 시몽동, 바라드 등의 이론을 교차하여, 학습이 특정 주체에 귀속되는 속성이 아니라 사회물질적 배치 내에서 발현되는 사건적 실재임을 논증하였다.

이러한 존재론적 고찰을 구체화하기 위해 ‘스마트 시티’와 ‘평생학습도시’를 분석의 현장으로 삼았다. 분석 결과, 도시의 지능형 인프라와 데이터 네트워크는 단순한 교육의 도구를 넘어, 인간과 비인간 요소가 상호 관입하며 스스로 앎을 생성하고 구조화하는 역동적인 ‘어셈블리지로서의 학습(Learning as Assemblage)’을 실현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결론적으로 본 연구는 학습의 행위성이 네트워크 전체로 분산되는 양상을 밝힘으로써, 학습의 단위를 개별 학습자에서 ‘도시-데이터-신체’가 융합된 배치로 재설정하고, 미래 평생학습의 존재론적 토대를 새롭게 정초하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

Abstract

This study deconstructs the human-centric concept of the “subject” in traditional pedagogy and elucidates the ontological essence of “Learning without a Subject” within the frameworks of posthumanism and new materialism. This research redefines learning not as the cognitive appropriation of an individual subject but as ontological “transduction” arising from the flat entanglement of human and non-human entities (e.g., matter, data, and algorithms). By intersecting the theories of Deleuze, Simondon, and Barad, this study demonstrates that learning is an event-based reality that emerges within sociomaterial configurations, rather than an attribute belonging to a singular subject.

To substantiate this ontological inquiry, “Smart Cities” and “Lifelong Learning Cities” are examined as specific empirical sites. The findings reveal that intelligent infrastructures and data networks within these cities are more than mere educational tools; instead, they embody “Learning as Assemblage,” where human and non-human elements interpenetrate to autonomously generate and structure knowledge. Ultimately, this research clarifies how agency is distributed across networks and reconfigures the fundamental unit of learning from the individual to a “city-data-body” ecosystem, thereby establishing a new ontological foundation for the paradigm of lifelong learning.


Keywords: learning without a subject, posthumanism, learning assemblage, smart city, lifelong learning city
키워드: 주체없는 학습, 포스트휴머니즘, 학습 어셈블리지, 스마트 시티, 평생학습도시

Ⅰ. 서론

전통적 교육학과 인식론에서 학습은 언제나 ‘인간 주체’를 전제로 이루어져 왔다. 근대 교육의 근간이 된 구성주의(constructivism)와 인지심리학적 모델들은 학습을 주체가 외부 정보를 내면화하여 인지 구조를 변화시키는 유의미한 활동으로 정의한다(Piaget, 2001; Vygotsky, 1978). 그러나 현대의 초연결 네트워크 환경과 인공지능 기술의 비약적 발전은 이러한 주체 중심적 패러다임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인간 개인이 학습의 유일한 주인공이라는 전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며, 지능은 고립된 자아 내부가 아닌 복잡한 관계망 속에서 발현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특히, 데이터 알고리즘이 인간의 인지적 판단을 선행하여 학습 경로를 재구성하고, 도시의 지능형 인프라가 인간의 의도와 무관하게 특정 지식을 생산·유통하는 현상은 인간의 주체적 결단을 전제로 하는 기존 교육학적 프레임워크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인식론적 단절’을 야기한다. 이는 단순히 신기술의 도입이라는 현상적 변화를 넘어, 평생교육학이 그간 견지해 온 ‘인간다움’과 ‘학습’의 정의를 근본적으로 재편해야 할 학문적 절박함을 시사한다. 이러한 인식의 대전환은 개별적 인지 능력의 축적을 넘어서는 ‘초개체적(trans-individual)’ 차원의 역동성을 요구하며, 학습을 고정된 인간의 소유가 아닌 물질과 사회적 관계의 얽힘 속에서 발생하는 발현적 사태로 포착할 것을 제안한다.

이러한 학문적 절실함은 주체 중심성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다양한 철학적 시도로 이어졌으며, 이미 학계에서는 주체 너머의 새로운 학습 가능성을 탐색하기 위한 논의가 지속되어 왔다. 질 들뢰즈(Gilles Deleuze)와 펠릭스 가타리(Félix Guattari)는 지식이 고정된 주체에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 요소들이 결합된 어셈블리지(assemblage), 즉 배치 내에서 생성되고 변용된다고 주장하며 주체 중심적 사고의 탈피를 촉구했다(Deleuze & Guattari, 2003). 이와 더불어 카렌 바라드(Karen Barad)의 신유물론적 접근은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가 현상학적으로 얽혀 ‘내-작용(intra-action)’하는 과정을 규명함으로써, 학습을 특정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안정화되는 과정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Barad, 2007). 특히 질베르 시몽동(Gilbert Simondon)의 변환(transduction) 개념을 경유할 때, 학습은 기성의 개체가 정보를 습득하는 과정이 아니라, 개체화의 과정 그 자체로서 상이한 존재들 간의 질적 비약과 새로운 관계 맺기가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존재론적 사건으로 구체화된다(Simondon, 2020). 이들 이론가는 각기 다른 개념적 도구를 사용하고 있으나, 그 핵심 논리를 통합적으로 고찰할 때 우리는 ‘주체없는 학습’의 새로운 지형도를 그릴 수 있다.

다양한 포스트휴먼 담론들은 제각기 다른 개념적 기표를 사용하고 있으나, 종국에는 ‘인간 주체’라는 고정된 중심축을 해체하고 학습의 발생적 근원을 ‘관계의 역동성’으로 돌린다는 점에서 하나의 지점으로 수렴된다. <표 1>은 본 연구가 원용하는 핵심 이론가들의 개념적 지형을 비교하고, 이들이 어떻게 ‘주체없는 학습’이라는 통합적 결론을 향해 정렬되는지를 시각화하여 보여준다. 들뢰즈의 ‘배치’가 학습이 일어나는 ‘탈중심적 장(field)’을 제공한다면, 바라드의 ‘내-작용’은 그 장 안에서 주체와 객체가 분리되기 이전의 ‘작동 방식’을, 시몽동의 ‘개체화’는 그 작동을 통해 시스템이 새로운 위상으로 전이되는 ‘존재론적 사건’를 설명함으로써 상호 보완적인 논리 체계를 형성한다.

<표 1> 
주요 이론의 교차와 ‘주체없는 학습’으로의 개념적 수렴
구분 주요 학자 핵심 개념 존재론적 층위
기계적 배치 들뢰즈 & 가타리 어셈블리지, 신체 관계적 차이 생성
행위적 실재 카렌 바라드 내-작용(intra-action) 상호 얽힘, 회절
존재적 변환 질베르 시몽동 개체화, 변환(transduction) 존재의 변위

결국 ‘차이 생성’, ‘내-작용’, ‘개체화’라는 개념적 층위들은 서로 혼용되는 것이 아니라, 학습이라는 거대한 사회물질적 사건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카메라 앵글과 같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주체 너머의 리좀적 연결망을 조망한다면, 바라드는 그 연결망 내부에서 인간과 비인간이 분리 불가능하게 뒤섞이는 찰나의 행위성에 주목하고, 시몽동은 이러한 얽힘을 통해 시스템이 준안정적 상태를 넘어 새로운 존재로 변모해 가는 수직적 깊이를 더한다. 이 세 가지 관점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비로소 학습은 ‘누군가에 의한 의도적 행위’가 아닌 ‘배치 그 자체의 변형’이라는 ‘주체없는 학습’의 구체적인 상(image)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존재론적 수렴은 학습을 인간만의 전유물로 삼았던 근대적 사유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며, 교육학의 시선을 보다 평평하고 광범위한 존재의 층위로 확장하도록 이끈다.

현대 교육학은 생물학의 흐름과 궤를 같이하며 인간을 유일한 주체로 상정하던 전통적 관점과 결별하고, 포스트휴먼적 주체성을 탐색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교육학적 논의는 생명을 다룰 때 인간의 기준과 가치를 투영하는 ‘인간 중심주의의 거울’에 머물러 있다(Coole & Frost, 2010; Haraway, 1992). 이는 비인간 존재를 인간의 관점에서 대상화하거나 도구화하는 기존의 위계적 질서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음을 시사함과 동시에 단순히 비인간을 행위의 동반자로 승격시키는 수준을 넘어, 존재들의 얽힘 속에서 주체와 객체의 경계가 무너지고 새로운 존재론적 배치가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과정에 주목할 것을 요구한다.

생명체의 진화와 존재는 본래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강도적 역량들이 상호 내-작용하며 발생시킨 차이들이 누승적으로 축적되어 나타난 양태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존재는 위계적 서열이 없는 ‘평평한 존재론(flat ontology)’의 개별자로 재정의되어야 한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인간과 비인간, 물질과 사회적 관계가 동등한 층위에서 얽혀 있다는 ‘사회물질적(sociomaterial) 관점’을 형성하였으며, 최근 교육학 및 사회과학 전반에서 이를 기반으로 한 존재론적 연구들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DeLanda, 2006; Fenwick & Edwards, 2010; Fox & Alldred, 2017; Latour, 2005; Orlikowski, 2007; Viczko & Riveros, 2017).

국내 연구에서도 이러한 ‘포스트 휴먼 주체’ 관련 논의는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특히 정보사회학 및 교육철학 분야에서는 학습과 지식이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네트워크에 분산되어 연결되고, 확장하는 정동 관점에 주목하거나(김도헌, 2020; 전가일, 2022), 인공지능 시대의 학습은 인간의 인지 역량을 넘어선 배치체라는 시스템 전체의 사건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최승현·서범종, 2022; 한숭희·최근정, 2023; Han, 2017). 스마트 시티 담론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단순한 도시 공학을 넘어선 ‘지능적 배치체’로서 재조명받고 있다. 기존 연구들이 스마트 시티를 인간의 편의를 위한 도구로 보았다면, 최근의 비판적 도시 연구들은 도시의 각종 센서와 알고리즘이 시민과 결합하여 스스로 최적화 경로를 찾아내는 과정을 일종의 체계 학습 혹은 시스템 학습으로 분석하고 있다(박진희·박상옥, 2025; Gabrys, 2016; Hasse, 2019; Hayles, 2017; McFarlane, 2011).

이러한 시스템적 최적화의 양상은 최근 ‘평생학습도시(Lifelong Learning City)’의 패러다임 확장과 맞물려 더욱 복잡한 배치체를 형성하고 있다. 기존의 평생학습이 개별 학습자의 역량 강화나 학위 취득이라는 개인적 목표에 국한되었다면, 최근의 평생학습도시 모델은 도시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학습 생태계’로 변모시키고 있다(Han & Makino, 2013; Longworth, 2006; OECD, 2018). 국내 평생학습도시 담론 역시 ‘학습의 일상화’를 넘어, 지역사회의 다양한 노드(도서관, 커뮤니티 공간, 디지털 플랫폼)가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공동체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집단학습의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김보경·박상옥, 2025; 변종임·윤미경, 2022; 양병찬, 2015). 여기서 학습은 특정 강사와 학생이라는 주체 간의 상호작용을 넘어, 도시의 유휴 공간, 디지털 아카이브, 시민의 생활 데이터가 융합되어 새로운 지역 지식을 생성하는 과정이다. 즉, 평생학습도시는 스마트 시티의 기술적 인프라와 결합하여, 인간 주체가 의도적으로 학습을 주도하지 않더라도 도시 생활의 궤적 자체가 지능을 형성하는 ‘사회적 배치’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처럼 기술적 하이브리드 체제 내에서 발생하는 학습은 개별적 인지의 경계를 넘어서는 ‘탈-영토화된(deterritorialized)’ 흐름이며, 인간과 비인간 요소가 공-진화하며 만들어내는 시공간적 변환의 산물로 이해되어야 한다(한숭희·최근정·신혜정, 2025).

이와 같은 도시 차원의 집합적 지능 형성은 학습의 동력이 더 이상 인간 개인의 의도나 인지적 노력에만 전착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지식의 생성과 순환이 도시의 인프라, 알고리즘, 시공간적 어셈블리지 사이에서 비인간 행위자들과의 상호작용(interaction) 및 상호 내-작용(intra-action)을 통해 ‘관계적’으로 발현되는 양상을 띰에 따라(Barad, 2007; Latour, 2005), 전통적인 교육학이 전제해 온 의식적이고 자기주도적인 학습 주체라는 개념은 그 유효성에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내게 된다. 즉, 학습은 주체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폐쇄적 과정이 아니라 사회물질적 배치 내에서 발생하는 ‘사건적 효과’로 재편되며, 이는 학습을 주체라는 중심성으로부터 해방하여 사유할 논리적 필연성을 제공한다. 결국 학습의 주도권은 고정된 ‘나’에게서 ‘우리-사물-환경’의 네트워크로 전이되며, 이는 학습의 본질을 개체의 획득이 아닌 체계의 변환으로 재정의하게 만든다.

본 연구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 개인학습의 인지심리학적 한계를 보완하는 기존의 ‘조직학습(organizational learning)’이나 맥락을 강조하는 ‘상황학습(situated learning)’을 훌쩍 넘어, ‘주체없는 학습(Learning without a Subject)’이라는 새로운 이론적 개념을 제안하고 그 존재론적 작동 방식을 규명하는 데 있다. 기존의 대안 이론들이 인간과 환경의 상호작용을 강조하며 진보적 관점을 견지해 왔으나, 여전히 학습의 ‘최종 심급’을 인간의 인지 구조 변화나 사회적 합의에 둠으로써 물질적 배치가 발휘하는 능동적 변환 역량을 포착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현대의 지능형 학습 환경은 인간의 의도를 선행하거나 때로는 배제하며 스스로 앎을 조직해 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 이론의 단순한 확장이나 보완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존재론적 잉여를 발생시킨다. 따라서 평생교육학이 실제 변화하는 세상의 역동성으로부터 괴리되지 않기 위해서는, ‘주체’라는 성역을 해체하고 학습의 발생적 근원을 재탐색해야 할 학문적 절박함에 직면해 있다.

여기서 본 연구가 제안하는 ‘주체없는 학습’의 ‘주체없음’이란 학습의 행위성이나 교육적 의미 자체가 소멸한다는 허무주의적 선언이 결코 아니다. ‘주체없는 학습’에서 부정되는 주체는 어디까지나 근대 철학이 상정해 온 ‘고립되고 자율적이며 특권화된 인간 중심적 자아’에 국한된다. 오히려 이 개념은 인지적 결단을 독점하던 인간의 오만을 해체함으로써, 데이터, 인프라, 환경 등 비인간 행위자들과 함께 앎을 공-생산(co-production)하는 ‘분산된 행위성(distributed agency)’의 긍정을 의미한다. 즉, ‘주체없는 학습’은 인간 주체의 의지나 내면적 인지 과정을 초월하여, 시스템, 데이터, 물질이 결합된 ‘어셈블리지(assemblage)’ 자체가 학습의 행위자이자 단위로 작동하는 존재론적 사건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유는 최근 교육학 및 사회과학 연구 분야에서 대두되는 ‘객체지향 존재론(Object-Oriented Ontology)’(Kleinherenbrink, 2022)이나 ‘평평한 존재론(Flat Ontology)’(Bryant, 2020)의 문제의식과 그 궤를 같이한다. 비인간 객체(사물, 물질, 데이터)를 인간의 도구로 격하하지 않고 그 자체의 독립적 실재와 행위성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객체지향적 접근은 유의미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그러나 본 연구는 고립된 객체 자체의 특성을 나열하는 데 머물지 않고, 이질적인 인간과 비인간 요소들이 얽히고 상호 내-작용(intra-action)하며 생태계적 사태를 산출하는 ‘어셈블리지의 동역학’에 집중한다(Fenwick, Edwards, & Sawchuk, 2011). 즉, 정적인 객체들의 탐구를 넘어 역동적인 ‘사회물질적 얽힘(sociomaterial entanglement)’ 속에서 어떻게 새로운 배움이 촉발되는지를 규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적 토대를 바탕으로, 본 연구는 기존 교육학이 간과해 온 신체, 물질, 비선형적 시간의 역할을 복원하여 ‘주체없는 학습’이 지니는 핵심적인 존재론적 특성을 구체화하고자 한다. 따라서 본 연구가 탐구하고자 하는 ‘주체없는 학습’은 존재들 간의 단순한 연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시몽동의 논의처럼 준안정적 상태에서 새로운 평형을 찾아가는 존재론적 변위이자 변환의 연속적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우리는 스마트 시티와 평생학습도시를 ‘주체없는 학습’이 시각화되는 구체적 현장으로 상정하고, 그 내부에서 지식이 생성되고 순환되는 발현적 메커니즘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그러나 본 연구는 특정 도시 시스템 내부에서 학습 배치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자료 기반으로 증명하려는 실증적 사례 분석(empirical case study)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기존의 피상적이고 도구적인 도시 담론이 가진 한계를 포스트휴머니즘적 존재론으로 돌파하기 위한 개념적 탐색에 방점을 둔다. 물질을 관계적 특이점으로 이해하는 사회물질적 관점을 견지하며, 평생학습체제 구축의 논리로서 ‘학습 어셈블리지(Learning as assemblage)’ 이론을 논구해 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핵심 질문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할 것이다. 첫째, 학습의 사회물질적 접근에서 ‘물질’과 ‘시간’은 어떤 존재론적 지위를 가지며, 이것이 학습배치의 동역학을 어떻게 구성하는가? 둘째, 인간 중심주의를 벗어난 ‘주체없는 학습’의 존재론적 특성은 무엇인가? 셋째, 포스트 휴먼 ‘주체없는 학습’의 관점은 스마트 시티 및 평생학습도시를 바라보는 기존의 인간 중심적 프레임을 어떻게 전환하며, 향후 도시 연구의 지평을 어떻게 확장할 수 있는가?


Ⅱ. 학습의 사회물질성이 가지는 동역학

학습의 사회물질적 접근은 인간과 물질, 사회와 기술을 분리된 범주로 보지 않고, 이들이 서로를 끊임없이 호명하며 구성하는 ‘얽힘(entanglement)’의 상태에 주목한다(Barad, 2017; Orlikowski, 2007). 신유물론적 논의의 한 축인 사회물질성은 물질을 인간의 의도를 실현하는 단순한 도구나 배경으로 치부하는 인간중심주의적 도구주의를 비판한다. 펜윅과 에드워즈(Fenwick & Edwards, 2010)에 따르면, 모든 사회적 실천은 물질적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며, 거꾸로 물질적 요소들 역시 사회적 관계 속에서 비로소 그 의미와 행위성을 획득한다.

이러한 관점은 세계를 고정된 실체들의 집합이 아닌, 끊임없이 ‘되어가는(becoming)’ 수행적 과정으로 파악한다. 국내 연구에서도 김홍중(2025)과 김환석(2022)은 신유물론을 경유하며, 사회과학이 인간 행위자에게만 부여했던 주체성을 비인간 행위자에게로 확장할 것을 제안한다. 즉, 사회물질성은 인간과 비인간이 대등한 지위에서 상호작용하며 특정한 효과를 산출하는 ‘평평한 존재론’을 지향한다. 이러한 존재론적 전제는 학습을 바라보는 전통적인 시각에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하며, 교육학의 핵심 범주들을 관계적 관점에서 재구성하도록 이끈다.

그렇다면 ‘학습의 사회물질성’이란 무엇인가? 전통적 교육학에서 물질(교과서, 교실, 컴퓨터 등)은 학습이라는 정신 활동을 보조하는 수단에 불과했다. 그러나 사회물질적 관점에서의 학습은 인간 주체의 내면화 과정을 넘어, 신체, 기술, 제도, 인프라, 텍스트가 특정한 방식으로 결합하여 새로운 역량을 형성하는 ‘배치의 사건’으로 재정의된다. 학습의 물질성은 단순히 ‘사물’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이 얽혀 성취해 내는 ‘수행적 결과’에 초점을 맞춘다(Cole, 2011; Engeström, 2016; Fenwick, Edwards, & Sawchuk, 2011). 이는 학습을 개별 주체의 인지 역량으로 환원하지 않고, 주체와 도구, 환경이 하나의 배치로서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추적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학습의 사회물질성은 다음의 특성을 보인다. 첫째, 행위성(agency)의 분산이다. 학습은 학습자 개인의 의지뿐만 아니라 그가 사용하는 디지털 플랫폼의 알고리즘, 물리적 공간의 어셈블리지, 데이터의 흐름과 같은 물질적 요소들이 함께 공모하여 일어나는 결과물이다. 둘째, 관계적 특이성(singularity)이다. 물질은 고정된 속성이 아니라, 어떤 배치에 속하느냐에 따라 그 역할이 변화한다. 예를 들어 스마트 시티의 센서는 단순히 데이터를 수집하는 도구일 수도 있지만, 신호체계와 결합하여 도시의 흐름을 조율할 때는 시스템 전체의 ‘학습하는 감각기관’으로 기능한다. 이처럼 학습의 동역학이 지니는 분산되고 관계적인 성격을 이론적으로 명확히 규명하기 위해서는, 현대 철학의 주요 개념들을 통해 그 기저에 흐르는 존재론적 원리를 세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결국 학습의 물질성을 규명하는 작업은 학습을 개인의 소유물에서 해방시켜, 인간과 비인간이 얽힌 ‘다층적 행위자들의 관계성 변화’라는 전체의 속성으로 전환하는 과정이다. 논의의 과잉을 피하고 이론적 엄밀성을 기하기 위해, 본 연구는 이 변화의 과정을 설명하는 핵심 이론적 축으로 질 들뢰즈(Gilles Deleuze)의 어셈블리지(agencement: assemblage)와 신체, 질베르 시몽동(Gilbert Simondon)의 개체화(individuation)와 변환(transduction), 카렌 바라드(Karen Barad)의 얽힘(entanglement)과 회절(diffraction), 그리고 카를로 로벨리(Carlo Rovelli)의 비선형적 시간론에 집중하고자 한다. 들뢰즈의 어셈블리지, 즉 배치 개념은 신체의 물질성을 기계존재론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때 배치는 요소들의 단순한 모임이 아니라, ‘기계적’ 성격과 ‘창발적’ 속성을 동시에 지닌다. 배치 개념은 ‘신체성(corporeality)’과 결합하는데 여기서 신체는 유기적 생명체에 국한되지 않으며, 특정한 힘과 리듬을 지닌 모든 물질적 실체(데이터, 하드웨어, 공간)를 의미한다(Mulcahy, 2012; Nail, 2025).

최근 신유물론적 교육학 연구들에서는 학습활동을 상이한 신체들이 만나 서로를 변용시키는 과정으로 파악한다. 이때 학습은 인간과 비인간, 언어와 비언어의 경계가 무너지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이는 교육학이 전통적으로 간과해 온 ‘물질적 힘의 동역학’을 복원하며, 학습을 주체의 의지적 행위가 아닌 시스템적 사건으로 파악하게 함으로써 전통 교육학이 도달하지 못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한다(Cole, 2011; Fox & Alldred, 2017; Semetsky, 2006; Thompson, 2019).

이러한 ‘어셈블리지의 동역학’은 시몽동의 ‘개체화’와 ‘변환’ 개념을 통해 더욱 정교해진다. 그에 따르면 세계는 고정된 객체들의 집합이 아니라, 무정형이지만 풍부한 잠재성을 지닌 ‘전개체적(pre-individual) 장(field)’이다. 학습은 인간 활동 시스템 내의 도구적 진화가 아니라, 이질적 존재들 사이의 긴장이 상전이(Phase transition)를 일으키며 존재 전체를 구조화하는 변환의 과정이다(Simondon, 2020, p. 38). 즉, 배치는 단순히 정지된 구조가 아니라 잠재적 에너지를 현실화하며 스스로를 반복해서 갱신하는 역동적 시스템임을 시몽동의 논의가 증명한다. 이러한 추상적 존재론의 층위는 기술과 인간이 고도로 밀착된 현대 도시의 지능적 환경 속에서 구체적인 실천적 전형으로 드러난다.

지능형 어셈블리지라 할 수 있는 스마트 시티는 ‘주체없는 학습’이 물리적 공간에서 구현되는 현장이기보다 스스로 학습하는 포스트 휴먼 주체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CCTV와 알고리즘이 엮인 인프라가 시민의 이동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학습하여 교통 체계를 최적화할 때, 학습의 주체는 도시 인프라 그 자체다(Hasse, 2019; Kitchin, 2014). 이는 인간 주체의 의도가 빠진 자리를 시스템의 피드백 루프가 채우는 실천적 사례다. 또 다른 사례로 평생학습도시를 들 수 있다. 평생학습도시의 글로벌 네트워크(GNLC)는 전 지구적 학습 배치체를 형성한다. UNESCO 보고서(UIL, 2024)에 따르면, 각국의 학습 데이터를 표준화된 지표로 번역하여 분석하는 과정이 인간 주체를 배제한 채 시스템 간의 연결로 발생하는 학습임을 시사한다. 국내 NILE의 학습이력 관리 시스템 또한 개인의 학습을 국가적 데이터 자산과 결합하여 사회적 배치 자체의 역량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한편, 전통 교육학의 인간중심적 관점에서 벗어나 인간과 비인간의 새로운 존재론적 구축을 시도함으로써, 우리는 학습을 ‘무엇을 아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배치되고 작동하는가’의 문제로 재정의할 수 있다. 학습 어셈블리지에서 학습자는 더 이상 고립된 인간 주체가 아니다. 학습자는 배치체 내의 수많은 노드 중 하나이며, 인간과 비인간 요소들이 얽혀 있는 ‘연결된 신체들’ 그 자체다(Braidotti, 2019; McFarlane, 2011). 이러한 관점은 지식의 소유권과 학습의 책임을 개인이 아닌 네트워크 전체로 분산시키며, 포스트-인본주의 시대에 부합하는 새로운 학습의 윤리를 요구한다. 결국 학습이란 인간이라는 경계를 넘어 확장되는 진화적 과정이며, 우리는 거대한 인지적 배치체의 일원으로서 시스템과 공진화해야 한다.

이 사유를 확장해 본다면, 과학적 예측이 닿지 않는 인간과 물질의 역동적 활동 속에서, 학습은 지식의 수동적 습득이 아니라 위상 변화를 동반하는 존재론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질베르 시몽동의 개체화와 변환은 이 사태를 잘 설명하고 있는데, 그 주요 특징은 준안정적 불균등화이다. 개체화는 개체가 환경으로부터 스스로를 구별하며 산출되는 과정이지만, 동시에 개체는 연합 환경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 들뢰즈가 말하듯 “개체는 세계와 분리될 수 없으며”, 환경의 이질적 물질들(데이터, 탄소, 유기물 등)을 시간적으로 수축하여 현실화하는 ‘수축기계’가 된다. 따라서 학습의 형태(form)는 고정된 구조가 아니라, 연합 환경과 함께 구성되는 역동적인 형성(formation) 그 자체다.

최근 시몽동의 변환 과정은 카렌 바라드가 주장하는 물질 운동의 ‘얽힘’ 및 ‘내-작용(Intra-action)’ 개념과 맥을 같이 하며 포스트휴먼 교육학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다(Barad, 2007; De Freitas & Sinclair, 2014). 학습은 더 이상 관찰 주체와 대상이 독립적으로 분리된 상태에서 정보를 주고받는 선형적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주체와 객체가 현상적으로 얽혀 상호-작동하며 서로를 경계 짓고 동시적으로 생성되는 과정이다(Hultman & Lenz Taguchi, 2010). 여기서 학습의 방식은 고전적 성찰(reflection)이 아닌 ‘회절(diffraction)’의 원리를 따른다. 반사가 거울처럼 동일성을 재현하고 표상하는 행위라면, ‘회절’은 파동이 장애물을 만나거나 겹쳐질 때 새로운 간섭무늬를 만들어내는 물리적 현상을 은유한다(Barad, 2007; Haraway, 1992). 즉, 학습에서의 ‘회절’은 존재들 사이의 차이가 겹쳐지며 고정된 지식을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지식의 배치와 존재 양식을 산출하는 생성적 행위로 정의된다(Murris & Bozalek, 2019).


Ⅲ. 주체없는 학습: 신체는 어떻게 아는가

앞서 살펴본 개체화와 얽힘의 과정은 선형적이고 계량적인 ‘크로노스(Chronos)’의 시간이 아닌, ‘아이온(Aion)’의 시간태를 따른다. 시간은 일반적인 기본 틀이 아니라 존재들 간의 연결 관계가 낳은 잠정적인 결과물이다(Rovelli, 2017; Serres & Latour, 1995). 시간마저도 행위자 네트워크 속에서 작동하는 비인간 행위자이기에, 우리는 과거의 사유와 현재의 기술을 동시적인 하이브리드로 결합할 수 있다. 학습의 순간은 과거-현재-미래가 수평적으로 펼쳐지는 아이온의 시간 위에서 발생하며, 학습자는 이 시간적 얽힘 속에서 자신의 위상을 변화시킨다.

이때 ‘안다는 것’은 고정된 정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 불균등한 긴장 상태에 놓인 문제제기적 장 속에서 개체와 환경의 변조를 통해 새로운 해(solution)를 창조하고 개체화되는 과정이다. 학습자는 단순히 지능을 가진 생명체가 아니라, 시간과 물질, 신념과 과학적 측정이 하이브리드된 거대한 네트워크 속에서 끊임없이 변환되는 ‘결정화의 지점’이다. 학습이 정적인 정보 습득이 아닌 역동적인 존재의 변주라면, 우리는 그 결정화가 일어나는 구체적인 장소이자 매개인 ‘신체’의 역할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학습의 과정에서 이처럼 끊임없이 변환되는 존재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들뢰즈는 존재의 개체적 분출인 ‘이것임(Haecceity)’의 포착이 오직 ‘신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역설한다(Deleuze & Guattari, 2003). 여기서 신체는 유기적 기관의 기능이나 고정된 주체성으로 한정되는 실체가 아니다. 신체는 ‘일관성의 구도(Plane of Consistency)’1) 위에서 오직 경도(longitude)와 위도(latitude)에 의해서만 규정되는 역동적 장이다. 경도는 물질적 요소들의 속도와 정지(빠름과 느림)의 관계를 의미하며, 위도는 신체가 행사하거나 감응할 수 있는 강렬한 변용태(affects)의 역량을 의미한다. 즉, 신체는 지도 제작과 같이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운동성 그 자체를 의미한다(Bryant, 2020).

여기서 논의하는 신체는 인식의 ‘주체’와 엄격히 구분된다. 주체는 대상을 자신과 분리된 객체로 규정함으로써 ‘이것임’의 생생한 실재를 포착하는 데 한계를 지닌다. 반면, 신체는 주체-객체의 이분법이 붕괴된 일관성의 구도 위에서 사건의 한 성분(항)으로 존재한다. 개구리가 연못에 뛰어드는 ‘퐁’ 소리의 사건에서, 주체는 소리를 객관적으로 ‘청취’할 뿐이지만, 신체는 그 소리 나는 사건의 진동에 내재하여 적막이 깨어지는 본질적 찰나에 감응한다. 이처럼 신체가 사건의 배치 속에 깊숙이 연루될 때, 신체는 새로운 경도와 위도를 획득하며 비로소 ‘이것임’을 포착할 수 있는 지각을 형성한다.

부연하자면, 들뢰즈적 관점에서 어셈블리지란 이질적인 요소들이 일관성의 구도에 의해 계열화되어 새로운 사건을 생성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배치는 사건을 발생시키고 변화시키며 반복하게 하는 실천적 기반이다. 이때 ‘이것임’은 배치의 산물이자 결과물로 존재한다. 일상의 배치가 탈영토화되어 새로운 배치로 전환될 때 비로소 ‘이것임’이 드러나며, 들뢰즈와 가타리는 이를 ‘개체화된 배치물 전체’라고 명명한다. ‘이것임’이 발현되는 배치에는 반드시 주체이기를 그친 신체가 사건의 구성 요소로서 내속한다. 신체의 지각(경도)과 감응(위도)이 사건의 일부로 배치될 때, 배치체는 그 고유한 개체성을 획득하게 된다. 이렇듯 배치로 기능하는 신체는 단순히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 수동적 존재를 넘어, 배치의 변환 속에서 스스로를 새롭게 조직해 나가는 강력한 자기 생성의 동력을 지닌다.

결국 특정한 배치(aassemblage) 내에서 결핍 없는 개체성의 정수인 ‘이것임’을 포착하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자기 생성의 과정으로 귀결된다(Deleuze, 2004; St. Pierre, 2017). 여기서 자기 생성은 단순히 정보나 지식을 습득하는 인지적 차원을 넘어 신체적·심리적·정신적 변용을 포괄하며, 나아가 주체의 활동 양식과 삶의 태도 전체를 근본적으로 재창조하는 실천적 기획이다(Semetsky, 2006). 리좀으로서의 학습은 무의식적 영역에서의 상호 변용이자, 마치 들불처럼 경계 없이 확산되는 존재론적 사건이다. 자기 생성은 미리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선형적 발달이 아니라, 다방향으로 뻗어 나가는 비위계적이고 발현적인 진화 과정이다(Cole, 2011).

이같이 다방향적이고 발현적인 자기 생성의 진화 과정은 필연적으로 서두에서 언급했던 ‘시간’의 문제를 다시 소환한다. 이론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가 지적하듯, 우주의 근본적인 층위에서 시간은 일정한 속도로 흐르는 선형적 변수가 아니라 사건들 사이의 ‘상호작용’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다(Rovelli, 2017). 그 결과, 해당 과학적 통찰은 학습을 지식의 수동적 습득이 아니라, 존재의 위상 변화를 동반하는 존재론적 개체화 사건으로 재정의하게 한다. 이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한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학습의 시간은 단순히 흐르는 물리적 시간이 아니라, 들뢰즈가 통찰한 ‘수동적 종합’의 층위에서 작동한다(Deleuze, 2004). 제1종합(습관-현재)은 유기체적 차원에서 반복되는 자극들로부터 차이를 수축하여 ‘살아있는 현재’를 정초하는 단계다. 제2종합(기억-과거)은 현재를 지나가게 하는 근거로서의 ‘순수과거’를 종합한다. 제3종합(영원회귀-미래)은 모든 경험적 동일성을 넘어선 ‘시간의 텅 빈 형식’으로, 학습자가 기존의 자아를 넘어 전혀 새로운 ‘자기 생성’의 단계로 도약하는 창조적 순간이다.

위에서 언급된 시간적 종합은 카렌 바라드가 제시한 ‘얽힘’ 및 ‘회절’ 개념과 존재론적으로 결합된다. 학습은 주체와 객체가 현상적 장 안에서 ‘내-작용(intra-action)’하며 서로의 경계를 끊임없이 획정해 나가는 과정이다(Barad, 2007; Lenz Taguchi, 2010). 이 과정은 선형적이고 계량적인 크로노스(Chronos)의 시간이 아닌, 과거-현재-미래가 수평적으로 공존하며 사건의 의미를 생성하는 ‘아이온(Aion)’의 시간태 위에서 전개된다(Deleuze, 2004; Sellers, 2013). 로벨리가 설파한 ‘순서 없는 시간의 얽힘’과 궤를 같이하며 학습은 하이브리드적 사건이 된다(Rovelli, 2017). 이러한 물리학적·철학적 시간 담론은 학습이라는 행위를 인간의 인지적 통제를 벗어난 거대한 사회물질적 사건으로 조망하게 하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다.

지금까지 고찰한 들뢰즈, 시몽동, 바라드, 그리고 로벨리의 존재론적 사유는 최근 교육학 및 평생교육 분야에서 타라 펜윅과 리처드 에드워즈가 주창한 사회물질적(socio-material) 학습 이론과 공명한다. 이들은 학습을 고립된 인간 주체의 인지적 획득 과정으로 간주하던 전통적 인식론을 비판하며, 인공물, 기술, 공간, 텍스트 등의 비인간 행위자가 인간과 동등하게 얽혀 작용하는 수행적 네트워크, 즉 ‘배치’ 자체를 학습의 기반으로 보아야 한다고 역설한다(Edwards, 2010; Fenwick & Edwards, 2010). 한 걸음 더 들어가, 포스트휴먼 교육학자들은 앞선 배치의 논리를 통해 교육이 ‘인간 중심주의’를 벗어나 물질과 담론이 상호 침투하는 역동적인 ‘되기(becoming)’의 과정임을 강변한다(Semetsky, 2006).

이처럼 순수 존재론과 얽힘의 물리학에서 촉발된 탈인간적, 탈중심적 사유의 흐름을 교육적 실천의 층위로 직접 연결함으로써, 비로소 우리는 학습을 고정된 주체의 소유물이 아닌 ‘관계적 배치체의 효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학문적 논의들은 개별적으로 흩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주체’라는 성역을 허물고 학습을 시스템적 효과로 재정의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일관된 개념적 체계를 형성한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하여, 본 연구가 핵심적으로 제안하는 ‘주체없는 학습’의 이론적 특성을 다음의 네 가지로 요약하여 정의하고자 한다.

첫째, 행위성의 민주적 분산과 ‘내-작용(intra-action)’이다. 학습은 고정된 주체가 지식을 획득하고 이동시키는 과정이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데이터, 알고리즘, 공간 등)이 맞물려 일으키는 얽힘과 사건들의 연쇄다. 지식 창출의 주도권은 인간의 인지 능력에 독점되지 않으며, 환경을 구성하는 이질적 행위자들 사이로 민주적으로 분산된다.

둘째, 학습 단위가 시스템으로서의 ‘어셈블리지(assemblage)’로 확장된다. 학습의 주체이자 단위는 개별 인간이 아니라, ‘인간-물질-기술⋯. 등’이 결합된 전체 활동적 배치체 자체로 격상된다. 학습자는 이 거대한 배치체 내의 수많은 노드 중 하나인 ‘연결된 신체’로 존재하며, 학습의 결과 역시 개인의 의도보다 배치의 역동적 성격에 의해 결정된다.

셋째, 차이의 생성과 ‘존재론적 변환’이다. 학습은 외부의 정보를 내부로 옮겨 담는 일이 아니라, 시스템 내부의 준안정적 불균형(결핍, 긴장, 문제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전개체적 장에서 일어나는 구조적 상전이이다. 이는 배치의 탈영토화와 재영토화 과정이며, 인식의 덧셈이 아닌 존재 위상의 전면적 변화를 의미한다.

넷째, 리좀적 ‘무의식’과 ‘비선형적 시간태(Aion)’의 발현이다. 학습은 명시적인 인지적 결단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무수히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작은 신체적 경험들이 리좀적 무의식 층위에서 분산적으로 조율된다. 과거-현재-미래가 수평적으로 공존하는 회절적 간섭을 통해 생성된 새로운 학습은 시스템 내부에 안정화되며(블랙박스화), 비로소 새로운 주체와 객체, 즉 주체나 객체 어느 한 형태가 아닌 상전이 형태로 결정화한다.

이처럼 포스트휴먼 주체와 존재론적 시간의 얽힘에 대한 사유는 추상적 이론의 층위를 넘어, 우리 삶을 구성하는 구체적 공간인 ‘도시’라는 물리적 배치체 속에서 그 실제적 양상을 드러낸다. 이론이 제시한 개체화와 상호 내-작용의 기제들이 실제 세계에서 어떻게 지능을 형성하는지 실증하기 위해, 들뢰즈 차이 생성과 시간의 세 가지 종합, 로벨리의 시간론과 바라드의 얽힘, 시몽동의 개체화 과정이 구체적인 기술-공간적 인프라와 결합되어 ‘주체없는 학습’을 시각화하는 핵심 장소로서 ‘스마트 시티’와 ‘평생학습도시’에 주목하고자 한다.


Ⅳ. 두 도시 이야기
1. 스마트 시티: 주체없는 학습의 알고리즘적 배치2)

앞서 논의한 신유물론적 시간론과 개체화 이론을 바탕으로, 현대 도시의 가장 진보된 형태인 ‘스마트 시티(Smart City)’를 분석한다. 스마트 시티는 단순한 정보통신기술(ICT)의 집약체를 넘어,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가 들뢰즈의 ‘아이온적 시간’ 속에서 얽히며 ‘주체없는 학습’을 실현하는 거대한 학습 배치체이다. 스마트 시티의 교통 최적화 시스템이나 지능형 에너지 그리드는 카를로 로벨리가 정의한 ‘사건들의 네트워크’로서의 시간을 현실에 가시화한다. 시민 신체의 이동 궤적(데이터)은 도시의 센서 및 알고리즘과 결합하며, 여기서 학습은 시민의 의식적 의도와 무관하게 시스템 전체의 차원에서 발생한다.

이와 같이 스마트 시티가 행위자들의 역동적 얽힘으로 정의될 때, 이론적 층위의 논의는 실제 도시 행정의 데이터 처리 과정과 맞물리며 그 구체성을 획득하게 된다. 단순한 이론적 추론을 넘어, 서울시의 지능형 교통 체계인 TOPIS(Transport Operation & Information Service)의 실제 작동 방식은 이를 구체적인 경험적 데이터로 증명한다. 과거의 전통적인 시스템이 특정 지점을 통과하는 차량의 단순 계측에 의존했다면, 현재의 TOPIS 알고리즘은 차량 단위의 고해상도 궤적 데이터(연간 약 130억 건 이상)를 끊임없이 수집하여 실시간 교통 상태를 추정하고 제어한다(임희지 외, 2019; Townsend, 2013; Yamamura, 2018). 시민의 반복적인 이동 패턴은 들뢰즈가 언급한 수동적 종합의 첫 번째 단계인 ‘제1종합(습관)’의 과정을 수행한다. 수많은 신체의 움직임이 데이터로 수축(contraction)하여 알고리즘에 입력될 때, 도시는 ‘살아있는 현재’의 리듬을 형성한다. 이때 알고리즘은 크로노스적 선형 시간에 갇히지 않고, 과거의 누적된 트래픽 패턴(순수과거)과 현재의 실시간 변수를 동시에 연산하여 미래의 최적 경로를 ‘회절(diffraction)’시킨다.

이를 보다 구체적인 일상적 사태로 살펴보자. 예컨대 도심 주요 도로에서 예기치 못한 교통사고나 폭우로 인한 침수가 발생했을 때, TOPIS는 단순히 중앙 통제실의 인간 관리자에게 경고를 보내고 지시를 기다리는 수동적 도구에 머물지 않는다. 시스템 내부의 알고리즘은 즉각적으로 주변 CCTV의 영상 데이터, 시내버스의 실시간 GPS 좌표, 시민들의 모바일 내비게이션 검색량 급증이라는 이질적이고 파편화된 데이터들을 교차 연산한다. 이를 바탕으로 반경 5km 이내의 교차로 신호 주기를 자율적으로 재조정하여 병목 현상을 분산시키고, 도로 전광판(VMS)의 메시지를 변경해 운전자들을 우회 경로로 ‘넛지(nudge)’한다.

이 찰나의 역동적인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최적의 우회로를 찾아내고 질서를 회복하는 ‘앎(지식)’의 형성 과정에 개별 운전자나 관리자의 인지적 판단이 중심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운전자의 신체와 차량은 알고리즘이 산출한 새로운 파동에 자연스럽게 동기화되며 흐름을 바꾼다. 즉, 인간이 지식을 습득하여 행동을 바꾼 것이 아니라, 도시라는 거대한 인지적 어셈블리지가 예기치 않은 돌발 변수를 스스로 소화하여 불균형 상태를 해소하고 새로운 평형을 찾아내는 ‘시스템적 자가 학습’을 수행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시민의 신체와 알고리즘은 하나의 배치체로 얽히며, 도시 전체의 흐름을 스스로 최적화하는 ‘주체없는 학습’을 전개한다. 이러한 TOPIS의 사례는 ‘주체없는 학습’의 구체적인 인과 메커니즘을 통계적으로 입증하려는 실증적 증거라기보다는, 향후 스마트 시티 시스템을 연구할 때 인간 중심의 인과율을 벗어나 데이터와 인프라의 주체적 행위성(agency)을 중심에 두어야 함을 보여주는 강력한 이론적 시뮬레이션으로 기능한다. 학습의 주도권이 시스템으로 이동하는 이러한 현상은 데이터가 지닌 존재론적 지위와 그 작동 방식에 대한 심층적인 성찰을 요구한다.

스마트 시티 내에서 데이터는 단순한 정보의 파편이 아니라, 시몽동의 관점에서 풍부한 잠재성을 지닌 ‘전개체적 실체(pre-individual reality)’로 작용한다. 도시의 기반 시설(CCTV, 스마트 가로등, 환경 센서)은 인간의 개입 없이도 상호-작동(intra-action)하며 도시라는 유기체를 끊임없이 개체화(individuation)한다. 유동 인구의 급증이나 환경 수치의 변화로 시스템이 ‘준안정적 불균형’ 상태에 도달할 때, 알고리즘은 이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 새로운 신호체계를 구성하거나 자원을 재배치한다(Simondon, 2020). 이는 시몽동이 말한 ‘변환’의 과정이며, 이 지점에서 도시는 단순한 기계 장치를 넘어 ‘지능적 생태계’로 상전이 한다. 해당 상전이의 국면을 바라드의 관점에서 볼 때, 스마트 시티의 학습은 기존 지식의 단순한 반사(reflection)가 아니라 데이터와 신체, 공간이 서로 겹쳐지며 발생하는 ‘회절’의 결과물이다. 시민의 일상적인 보행은 데이터와 간섭무늬를 만들고, 이 무늬는 다시 도시의 물리적 환경을 변모시키는 피드백 루프를 형성한다.

콜린 맥팔레인(McFarlane, 2011)이 강조한 ‘주거(Dwelling)’의 실천은 이러한 도시 사건과 결합하여 주체의 자기 생성 과정으로 이어진다. 스마트 시티의 시민은 알고리즘적 배치 속에서 자신의 경도와 위도를 재설정하며 새로운 ‘이것임(haecceity)’을 포착한다(Deleuze & Guattari, 2003). 공유 모빌리티 이용이나 스마트 플랫폼 참여는 주체가 객체를 도구적으로 이용하는 단선적 행위가 아니라, 배치체 내의 구성 항으로서 ‘사건’을 공동 구성하는 실천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감응(affect)은 시민의 신체를 새로운 아이온적 시간태 속에 위치시킨다. 데이터의 흐름 속에서 출현하는 새로운 생활 양식은 다시 도시 인프라를 변화시키는 ‘자기조직화(autopoiesis)’의 순환을 완성한다(Han, 2011). 이처럼 시민 개개인의 일상적 실천과 신체적 감응이 배치체의 일부가 되는 과정은, 도시 전체가 디지털 기반의 거대한 플랫폼으로 진화하는 흐름 속에서 더욱 가속화된다.

이와 같은 스마트 시티의 자기조직화 과정은 도시를 유기적인 플랫폼으로 재구성하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통해 구체화된다. 이근형 외(2019)는 저서 『한눈에 읽는 스마트 시티』에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단순한 정보통신 기술의 도입을 넘어, 도시 공간의 물리적·사회적 인프라를 전면적으로 혁신하는 ‘플랫폼화’의 과정이라고 규정한다. 이들에 따르면, 현대 도시는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인공지능이 결합된 거대한 디지털 플랫폼 위에서 시민의 일상적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예측이 어려운 서비스를 가능한 정보로 산출한다. 이 디지털 플랫폼은 들뢰즈가 말한 ‘내재성의 평면(Plane of Immanence)’으로 작동하며, 데이터화된 시민의 신체, 자율주행 차량, 스마트 그리드망이라는 이질적인 기계존재들을 하나의 일관된 생태계로 접속시킨다. 즉, 물리적 공간과 가상의 데이터가 중첩되는 혼종적 시공간을 창출함으로써, 도시 자체가 스스로를 감각하고 학습하는 존재론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조성된 기반 위에서 도시는 롭 키친(Kitchin, 2014)이 주창한 ‘실시간 도시(real-time city)’의 동태적 학습을 수행한다. 키친은 도처에 편재한 유비쿼터스 센서 네트워크가 도시의 리듬을 ‘데이터 파이프라인’을 통해 실시간으로 스트리밍하며, 이를 통해 지능형 관리 시스템이 즉각적인 피드백 루프를 형성한다고 분석한다. 마이클 배티(Batty, 2013) 역시 이를 ‘계산 가능한 도시(computable city)’라 칭하며, 도시 현상이 알고리즘에 의해 지속적으로 시뮬레이션되고 조정되는 역동성을 강조했다. 결국 이 관점은 스마트 시티의 지능이 특정 중앙 통제 센터나 인간의 단선적 판단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센서와 분산된 노드들이 상호작용(interaction)하고 상호 내-작용(intra-action)하며 창발하는 시스템적 지능임을 입증한다. 수천만 개의 센서들이 얽혀 만들어내는 데이터의 파동은 곧 주체없는 학습의 생생한 교재이자 그 결과물로 기능한다.

특히 최근 글로벌 스마트 시티 정책의 핵심으로 부상한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기술은 이 ‘주체없는 학습’의 가상적 복제와 시뮬레이션 역량을 극한으로 끌어올린다. 현실의 도시를 가상의 3D 공간에 쌍둥이처럼 똑같이 구현해 내는 디지털 트윈은, 단순히 도시를 표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수많은 시나리오 시뮬레이션을 통해 미래의 재난이나 교통 문제를 선제적으로 해결한다(국토교통부, 2021; 임영희, 2019). 예컨대, 초강력 태풍이나 대형 화재와 같은 돌발 재난 상황이 예측될 때, 시스템은 인간의 지시를 기다리지 않고 가상의 풍동 실험과 연기 확산 시뮬레이션을 수만 번 반복 수행하며 실패의 데이터를 축적한다. 이 무수한 백그라운드 연산을 통해 시민의 이동 동선과 구조대의 진입로를 교차 분석하여 최적의 재난 대피 시나리오를 스스로 설계해 내는 것이다. 가상 공간에서의 반복적인 시행착오와 자가 연산은 현실 공간에 물리적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시스템 스스로 최적의 대안을 찾아내는 알고리즘적 자가 학습의 전형을 보여준다. 가상과 현실이 실시간 데이터로 동기화되어 끊임없이 서로를 얽어매고 재구성하는 이 순환 고리는 바라드의 ‘내-작용(intra-action)’을 가시적으로 증명하는 장이며, 기계와 데이터가 스스로의 물리적 한계를 넘어 새로운 위상 전이를 이루어내는 고차원적 학습배치이다. 이러한 디지털 복제와 연산의 고도화는 스마트 시티를 고정된 대상이 아닌, 다양한 알고리즘이 현상을 회절시켜 새로운 해결책을 생성하는 창발적 주체로 재해석해야 함을 시사한다.

위에서 언급한 기술적 플랫폼과 가상 시뮬레이션의 고도화는 결국 도시 생태계의 영속성이라는 존재론적 목표를 향한다. 신지 야마무라(Yamamura, 2018)는 그의 저서 『스마트시티 개발: 지속가능한 스마트 커뮤니티 실현을 위한 스마트시티 개발』에서 스마트 시티의 궁극적인 지향점이 단순한 인프라의 첨단화를 넘어 인간과 자연, 기술이 공존하는 ‘지속가능한 스마트 커뮤니티’의 구축에 있음을 역설한다. 존재론적 관점에서 볼 때, 야마무라가 제안하는 스마트 커뮤니티는 고정된 완성형의 공간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기후적·사회적 변수 속에서 시스템 스스로가 적응하고 균형을 찾아가는 ‘개체화의 과정’이다. 여기서 커뮤니티란 인간 주체들의 단순한 모임이 아니라, 지능형 전력망(smart grid), 환경 센서, 생태계, 그리고 시민의 일상이 비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상호작동하며 학습하고 진화하는 융합적 배치체로 이해되어야 한다.

지속가능한 개체화 과정은 거시적인 행정 및 협력 체계로 확장된다. 스마트 시티에서 이루어지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단순히 효율성을 높이는 도구를 넘어, 도시 행정관청, 민간 기업, 일반 시민이 데이터를 실시간 공유하고 협력하는 ‘데이터 기반 거버넌스’의 토대가 된다(이근형 외, 2019). 정보의 파편들이 거대한 데이터 댐으로 수렴되고 다시 각 노드(node)로 분배되는 이 순환 구조 속에서, 스마트 시티는 중앙 집권적인 인간 주체의 단선적 지시를 기다리지 않는다. 대신 예측 불가능한 도시 문제들에 직면했을 때 알고리즘적 연산을 통해 스스로 대안을 도출하고 자원을 재배치하는 학습 기계로서의 면모를 견고하게 드러낸다.

게다가 앞선 거시적 알고리즘 배치는 일상 공간에서 전개되는 미시적 실천, 즉 ‘리빙랩(Living Lab)’ 모델을 통해 더욱 역동적인 학습장(Learning Arena)으로 변모한다(성지은·이유나, 2018). 앤서니 타운센드(Townsend, 2013)는 스마트 시티가 관료나 거대 기술 기업의 하향식 통제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는 스마트 시민의 상향식 혁신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한다. 한국의 다양한 스마트 시티 리빙랩 사례에서 입증되듯, 시민들은 주거 환경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센서를 설치하고 데이터를 매개로 시스템과 ‘내-작용(intra-action)’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신체적 감각과 비인간 센서의 연산 능력이 수평적으로 얽히며 발생하는 ‘집단적-기계적 지능’이야말로, 스마트 시티가 기존 인프라를 넘어 매 순간 낯선 마주침 속에서 진화하는 살아있는 ‘학습 기계’임을 증명한다. 알고리즘 통제와 시민 참여가 교차하는 이러한 지점들은 결국 ‘학습’이라는 사건이 특정 주체의 점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징하게 드러낸다.

결과적으로 스마트 시티에서의 학습은 인간 주체의 독점적 지위를 완벽하게 해체한다. ‘안다는 것’은 알고리즘적 계산과 신체적 감응, 그리고 물질적 데이터의 얽힘 속에서 창발하는 시스템적 사건이다. 여기서 학습자는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연결된 신체들’의 총합인 배치 그 자체다. 예를 들어 서울시의 ‘지능형 교통체계(ITS)’ 사례를 살펴보면, 개별 운전자는 인식하지 못할지라도 시스템은 0.1초 단위의 원자료(raw data)를 수축하여 교통흐름의 ‘습관(제1종합)’을 정초한다. 이때 데이터는 개별 차량의 고립된 행위가 아니라, 도시 전체의 ‘맥동’이라는 사회물질적 기호로 번역된다. 특정 구간의 점유율이 한계치를 상회할 때(80%를 상회할 때), 알고리즘은 이를 ‘준안정적 불균형’ 상태로 감지한다. 카를로 로벨리가 말한 사건의 네트워크처럼, 시스템은 과거 5년간의 동일 시간대 패턴(순수과거)과 현재의 돌발 상황을 실시간으로 얽혀(entangled) 신호 주기를 스스로 재조정한다. 이 과정에서 도시는 인간의 직접적인 지시나 통제 없이도 자신의 물리적 위상을 유연하게 변화시키는 지능형 개체화를 이룬다.

도시의 그 같은 지능적 최적화 과정은 캐서린 헤일스(Katherine Hayles, 2017)가 제안한 ‘비의식적 인지(Nonconscious cognition)’ 개념을 통해 그 정당성을 획득한다. 그에 따르면, 인지는 인간의 의식적 자아를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것이 아니며 복잡한 데이터 스트림을 처리하는 기계적 장치들 사이에서도 고도로 발생한다. 스마트 시티는 인간 운전자의 의식적 판단 이전에 작동하는 거대한 ‘인지적 어셈블리지(Cognitive assemblage)’로서, 센서와 알고리즘이 실시간으로 정보를 교환하며 시스템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비의식적 학습을 수행한다. 이 지점에서 도시 공간은 루치아노 플로리디(Luciano Floridi, 2014)가 설명한 ‘인포스피어(Infosphere)’의 구체적 구현이 되며, 스마트 시티는 유기적 존재와 디지털 객체가 동등한 정보적 실체로서 상호작용하는 존재론적 평면으로 격상된다.

이와 같은 지능형 교통체계의 작동 방식은 학습의 주도권이 인간의 개별적 의지에서 시스템적 배치체로 이동했음을 시사한다. 여기서 학습은 운전자가 교통 정보를 습득하여 판단하는 ‘인식론적 과정’이 아니라, 데이터와 알고리즘, 물리적 신호체계가 실시간으로 상호-작동하며 최적의 흐름을 산출하는 ‘존재론적 사건’이 된다. 결국 스마트 시티에서의 지능이란 개별 항들의 합이 아니라, 불균형한 긴장을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를 재구성하는 시스템의 개체화 능력 그 자체인 것이다. 이는 교육학이 오랫동안 고수해 온 ‘학습 주체’라는 환상을 해체하고, 인간과 물질이 수평적으로 엮인 배치 차원의 학습, 즉 ‘주체없는 학습’이 가능함을 입증하는 구체적인 전형이라 할 수 있다.

2. 평생학습도시: 전개체적 데이터의 장과 집합적 개체화

스마트 시티가 실시간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즉각적인 교차를 통해 ‘주체없는 학습’의 자동성을 가시화한다면, 두 번째 도시인 ‘평생학습도시’는 이보다 거시적인 차원에서 전 지구적으로 축적된 방대한 학습 데이터가 하나의 잠재성을 지닌 존재론적 사건으로 전환되는 공간이다. 유네스코 글로벌 학습도시 네트워크(UNESCO GNLC)와 국내의 촘촘한 평생학습 인프라를 통해 수렴된 학습 이력들은 단순한 과거의 아카이브를 넘어, 시스템 전체의 새로운 위상 전이를 준비하는 준안정적 긴장 상태로 존재한다. 이제 평생학습도시는 개별 시민의 역량 강화를 목적으로 하는 선형적 교육 공간이 아니라, 데이터라는 잠재적 에너지와 도시라는 물질적 배치가 조우하여 스스로를 끊임없이 갱신해 나가는 ‘집합적 개체화’의 거대한 실험극장이 된다.

축적된 데이터의 집적은 시몽동이 정의한 ‘전개체적(pre-individual) 잠재성’이 가득한 에너지의 장(field)을 형성한다. 밀스(Mills, 2016)에 따르면, 학습 데이터는 단순히 지나간 기록이 아니라, 새로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에너지를 머금은 ‘준안정적 상태’의 물질적 실체이다. 평생학습도시 내에 축적된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는 결정화(crystallization)를 기다리는 과포화 용액처럼, 시스템 내부에 언제든 새로운 배움을 촉발할 수 있는 발생론적 토대를 갖추고 있다. 이는 단순한 정보의 모음이 아니라, 지역적 결핍이나 사회적 요구라는 촉매를 만났을 때 시스템 전체를 새로운 형태로 변화시키는 ‘잠재적 압력’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평생학습도시의 지능은 데이터를 소유한 주체의 지적 능력이 아니라, 데이터가 형성한 에너지 장의 긴장을 해소하며 새로운 학습 환경을 만들어내는 ‘변환(Transduction)의 역량’에서 비롯된다.

그 결과, 생성된 변환의 역량은 단일 도시의 경계를 넘어 초연결 사회의 거대한 흐름과 접속한다. 평생학습도시는 이제 전 지구적 차원에서 거대한 데이터 행위자들이 얽힌 네트워크로 재편되고 있다. 유네스코 평생교육연구소(UIL)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글로벌 평생학습도시 네트워크(GNLC)에는 전 세계 79개국 356개 도시가 가입되어 있으며, 약 3억 9천만 명의 시민이 이 데이터 배치 안의 노드(Node)로서 연결되어 있다. Osborne(2014)은 유네스코가 제시한 학습도시의 주요 특징 프레임워크가 도시의 발전을 측정하는 42개의 지표를 통해 개별 도시의 지능을 표준화된 글로벌 데이터 세트로 변환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 프레임워크는 개인의 역량 강화와 사회적 응집력, 그리고 지속 가능한 경제적 번영이라는 광범위한 혜택을 목표로 설정함으로써, 도시 시스템이 단순한 교육 제공을 넘어 전 지구적 가치 사슬 속에서 작동하게 한다(Longworth & Osborne, 2010). 야네바와 라모스(Yaneva, 2022) 역시 글로벌 네트워크가 개별 도시의 특수성을 ‘표준화된 지표’로 번역하여 전 지구적 관리 체계 속에 편입시킨다고 분석한다. 함부르크나 코크 같은 선도 도시들이 실시간 디지털 대시보드를 통해 학습 참여도를 시각화하는 현상은, 비인간 행위자인 ‘핵심 지표’가 인간 주체의 판단 이전에 시스템의 방향성을 선제적으로 설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살펴본 바와 같이 글로벌 네트워크의 확장 속에서, 한국은 세계적으로 가장 밀도 높은 평생학습도시 배치체를 보유하고 있다. 실제 경험적 데이터는 해당하는 시스템적 개체화의 규모를 압도적으로 증명한다. 2023년 말 기준, 국가평생교육진흥원(NILE)이 지정한 국내 평생학습도시는 199개에 달하며, 이는 전국 기초자치단체의 약 88%를 웃도는 수치이다. 특히 ‘평생학습계좌제’와 ‘K-MOOC’ 등에는 1,100만 건 이상의 누적 학습 이력과 수강 데이터베이스가 실시간으로 축적되어 관리되고 있다(국가평생진흥원, 2023). 한숭희와 마키노(Han & Makino, 2013)는 한국의 평생학습도시가 국가적 차원의 강력한 거버넌스와 법적 기반을 통해 육성되었으며, 이는 현대 사회의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핵심적인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특히 한국의 강력한 국가 주도 모델은 PASCAL 관측소의 국제 교류 프로젝트인 PIE(PASCAL International Exchanges) 등을 통해 서울, 광명 등 주요 도시들의 사례가 전 세계로 공유되며 글로벌 학습도시 담론의 핵심 노드로 기능하고 있다(Osborne, 2014).

그중에서도 한국의 연수구는 이러한 글로벌 네트워크와 전개체적 데이터의 장이 교차하는 집합적 개체화의 핵심 노드이자 대표적인 실천 사례로 기능하고 있다. 유네스코 글로벌 학습도시 네트워크(UNESCO GNLC)와 공동 발간한 2021년 성과집에 따르면, 한국 인천시 연수구는 그리스 도시 라리사(Larissa)와 함께 세계시민교육 클러스터의 코디네이터 도시로 활약하고 있다. 연수구는 2018년 GNLC 가입 이후 ‘배우고, 실천하고, 나누는(Learning, Acting, Sharing)’ 문화를 육성하며 국제 네트워크를 통해 다른 도시들과 지식과 경험을 활발히 공유해 왔다. 특히 팬데믹 위기 속에서도 지역사회 활동에 대한 일관되고 다각적인 지원을 제공했으며, 시민들이 ‘좋은 시민’이 되기 위해, 필요한 기술을 향상할 수 있도록 온·오프라인 소통을 강화하였다. 더 나아가 파트너십, 공공 대화 및 지역사회 참여를 촉진하는 다양한 이니셔티브와 실천 사례를 국제 사회에 공유함으로써, 평생학습도시가 전 지구적 차원의 지속 가능하고 민주적인 공동체 형성에 기여하는 역동적인 배치체임을 입증하고 있다. 이는 평생학습도시를 단순히 교육 정책이 실행되는 행정적 컨테이너로 바라보던 기존의 피상적 접근을 넘어, 도시 생태계와 전 지구적 데이터가 공명하며 스스로 앎을 조직화하는 ‘학습 어셈블리지’로 재개념화되어야 함을 강하게 시사한다. 전 지구적 지표와 지역적 특수성이 교차하는 이러한 흐름은, 평생학습도시가 단순히 교육 정보를 제공하는 단계를 넘어 지역의 자생적 생태계를 구축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의 평생학습도시들은 지역 소멸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데이터와 지역의 물질적 환경을 결합하는 창발적 실천을 보여주고 있다. 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발간한 2023 평생학습도시 우수사례집에 따르면, 김제시는 인구 절벽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청년을 대상으로 <청춘형 팜(Farm) 지도사-생육데이터요원 양성과정>을 운영하며 미래형 스마트팜 인력을 육성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농업 교육이 아니라, ICT 기반 스마트팜 시스템, 생육 데이터 모델링 실습, 빅데이터 서비스 교육을 융합하여 청년들이 지역의 미래 산업과 연계된 잠재적 역량을 발현하도록 돕는 과정이다. 한편, 곡성군은 자연과 호흡하는 생태전환교육의 선순환 모델을 구축하고자 지역 대학과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곡성군은 지역 대학과 교육 인프라를 공동으로 활용하며 <학교생태텃밭 교육과정 개발자 양성과정>을 운영하여 생태전환교육의 중심축이 될 인력을 양성함으로써, 인간 주체와 자연환경이 공진화하는 새로운 형태의 평생학습 생태계를 성공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이처럼 연수구의 세계시민교육부터 김제시의 스마트팜 데이터 실습, 곡성군의 생태전환교육에 이르기까지, 물리적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발생한 미시적 학습 사건들은 단발성 경험으로 휘발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활동들은 지역 평생학습 계좌제나 디지털 배지(Digital Badge) 시스템에 고스란히 축적되어 테라바이트(TB) 단위의 거대한 데이터를 형성하며(국가평생교육진흥원, 2024), 이는 곧 시몽동의 ‘전개체적 잠재성’을 지닌 에너지의 장(field)으로 기능한다. 특정 지역에서 고령층의 디지털 리터러시나 청년층의 스마트농업 등 특정 분야의 학습 로그(log)가 불균형하게 급증할 때, 시스템은 이를 ‘준안정적 불균등화’ 상태로 감지한다. 이때 알고리즘은 인간 주체의 판단 이전에 유휴 공간을 매칭하거나 맞춤형 교육과정을 제안함으로써 교육 자원을 즉각적으로 재배치하고 장의 새로운 구조화, 자기생성(autopoiesis)적 학습을 촉발한다(Han, 2011, p. 3).

따라서 국가평생교육진흥원과 UNESCO GNLC 간의 데이터 연동은 미시적 학습 사건을 전 지구적 배치체와 연결한다. 유네스코의 글로벌 지표(과거의 표준)와 지역의 실시간 학습 데이터(현재의 변용)가 아이온적 시간태 위에서 수평적으로 얽힐 때, 평생학습도시는 스스로의 위상을 재정립하며 차이를 생성하는 ‘영원회귀’의 시간, 즉 끊임없이 생성되는 미래 속으로 진입한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데이터의 순환과 알고리즘적 재배치는 학습자가 거주하는 물리적 공간과 건축적 환경을 통해 우리 신체에 기입된다.

결과적으로 형성된 데이터의 얽힘은 궁극적으로 평생학습도시의 물리적 건축과 매체적 환경을 통해 학습자의 신체와 직접 조우한다. 엘리자베스 엘스워스는 학습이 일어나는 장소를 단순히 지식이 전달되는 배경이 아니라, 학습 주체의 경험과 감각이 재구성되는 ‘교육적 전환(pedagogical pivots)’으로 파악한다(Ellsworth, 2005). 그에 따르면, 도시 내의 박물관, 도서관, 공공 광장과 같은 건축적 배치는 고정된 지식을 전수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자가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가는 ‘되어감(becoming)’의 과정을 촉발한다. 즉, 평생학습도시는 지식이 이미 ‘만들어진 것(made)’으로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라, 물질적 배치와 신체의 접속을 통해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는 역동적 페다고지 현장이다.

시몽동의 관점에서 볼 때, 평생학습도시는 학습자와 분리될 수 없는 ‘연합 환경’이며, 이곳의 물질적 요소들은 능동적인 비인간 행위자로 작동한다. 도시 내 건축적 구조와 디지털 인프라는 학습의 수동적 배경이 아닌, 신체의 경도와 위도를 결정짓는 변조기 역할을 수행한다. 한국의 읍·면·동 단위의 ‘행복학습센터’와 같은 미시적 공간 배치는 시민의 삶에 깊숙이 침투한다. 개방형 광장에 설치된 스마트 키오스크나 모바일 학습 플랫폼은 시민의 신체와 접속하여 새로운 지각체를 형성하며, 이는 주체의 의지 이전에 공간의 물질적 배치가 신체에 가하는 ‘학습 정동(affect)’의 발현이다. 카를로 로벨리가 말한 ‘사건의 얽힘’처럼, 퇴근 후 시민이 집 근처 도서관의 스마트 러닝 센터에 접속하는 순간, 그의 신체는 과거의 학습 이력(순수과거)과 미래의 역량 요구(영원회귀)가 수평적으로 만나는 아이온적 시간 속에 위치하게 된다.

오스본(Osborne)이 소개한 ‘EcCoWell’ 개념은 앞선 도시 인프라의 복합적 얽힘을 더욱 구체화한다. EcCoWell은 생태(Ecology), 경제(Economy), 공동체(Community), 문화(Culture), 그리고 웰빙(Well-being)과 평생학습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전략이다. 이는 평생학습이 교육이라는 독립된 영역이 아니라 도시의 물리적 환경, 시민의 건강, 경제적 생존과 실시간으로 결합되어 작동하는 사회물질적 배치체임을 보여준다(Osborne, 2014). 이러한 현대적인 통합 관리 전략은 학습도시가 추구해 온 인본주의적 이상을 구체적인 시스템의 층위에서 실현하려는 시도로 이해될 수 있다.

살펴본 평생학습도시의 진화는 1972년 유네스코가 『존재하기 위한 학습(Learning to Be)』을 통해 제안한 ‘학습사회’의 이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Faure et al., 1972). 당시 누구나 원하는 장소에서 학습이 가능한 사회를 구현하고자 했던 인본주의적 비전은 오늘날 전 세계 350여 개 도시가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성장하는 현실이 되었다. 보시어(Boshier, 2018)는 학습도시를 당국이 시민과 민주적으로 협력하여 모든 연령층을 위한 학습 기회를 발굴하고 즐거운 참여를 촉진하는 장소로 정의한다.

특히 학습사회 담론은 1960-70년대의 급진적 인본주의를 거쳐 1990년대 이후 실용적이고 경제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Field, 2001). Osborne(2014)과 Han(2011)은 1996년 들로르(Delors) 보고서 이후 학습도시가 단순한 학교 교육을 넘어 산업계, 자발적 단체, 가족 등 모든 사회적 기관이 교육 제공자가 되는 ‘전층위 학습’의 단계로 진입했다고 분석한다. 이는 학습도시가 시장, 즉 자본의 영역과도 긴밀히 얽히게 되었음을 의미하며, 시장영역의 고려 없이 시민 삶의 질 향상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인식을 반영한다. 그러나 학습사회의 개방성은 단순한 개인주의와는 다르다. 학습사회는 개별적 주체들의 단순 집합이 아니라 ‘열린 관계의 네트워크’이다(Jarvis, 2006). 개인은 자유로운 학습자로서 존재하지만, 동시에 타인 및 도시 시스템과의 지속적인 관계 맺기를 통해서만 사회적 존재로서 정당성을 획득한다.

이처럼 시민이 평생학습도시의 인프라를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행위는 들뢰즈가 말한 ‘제1종합(습관)’의 과정과 궤를 같이한다. 강의실이라는 폐쇄적 공간을 넘어 거리와 광장에서 이루어지는 정보와의 접촉은, 신체가 도시라는 거대 기계와 리듬을 맞추며 차이를 수축하는 ‘수동적 학습’의 현장이 된다. 이때 평생학습도시의 지능화는 개별 학습자의 활동이 데이터화되어 시스템 전체와 얽히며 발생하는 ‘회절 간섭’을 통해 완성되며, 이는 로벨리가 제안한 ‘사건들 간의 관계’로서의 시간이 평생교육 현장에서 구현되는 방식이다.

결과적으로 이 거대한 데이터 네트워크 안에서 학습자는 인프라, 알고리즘, 공간적 물질성과 공진화하는 ‘연결된 신체’가 된다. 시민이 도시 시스템이 제공하는 예측 불가능한 학습 경로와 접속하여 자신만의 ‘이것임’을 포착할 때, 비로소 리좀(rhizome)적 자기 생성이 일어난다. 이는 단순히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는 인식론적 차원을 넘어, 도시라는 거대 학습 기계의 일부로서 자신의 존재론적 위상을 끊임없이 이동시키는 변환의 과정이다. 평생학습도시는 인간 개인의 주체성을 넘어 데이터와 물질이 함께 지능을 형성하는 창발적 개체화의 장으로 기능하게 된다.


Ⅴ. 논의 및 결론

본 연구는 근대 교육학이 오랜 기간 자명한 전제로 삼아 온 ‘인간 중심적 주체’의 한계를 인식하고, 포스트휴머니즘 및 신유물론적 관점을 통해 평생학습의 새로운 존재론적 지평을 탐색하고자 하였다. 서론과 본론에 걸쳐 들뢰즈의 기계존재론과 리좀적 배치, 시몽동의 개체화, 바라드의 행위적 실재론과 상호-작동, 그리고 로벨리의 양자중력 시간론을 교차시키며 ‘주체없는 학습’과 ‘학습 배치’라는 핵심 개념을 도출하였다. 이 논의들에 따르면 학습은 내면적 의지를 지닌 고립된 개인의 인지적 획득 과정이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물질, 기술, 환경, 데이터 등)이 평평하게 얽혀 상호작용하는 거대한 사회물질적 네트워크 속에서 발생하는 존재론적 변환의 사건이다. 지금까지 전개한 거시적·이론적 논의를 구체적인 현실의 차원으로 끌어내어 현대 사회에서 ‘어셈블리지로서의 학습’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규명하기 위해, 본 연구는 공간과 데이터가 결합된 실천적 장소들을 주목하였다.

스마트 시티와 평생학습도시라는 두 가지 사례 분석은 ‘주체없는 학습’이 단순한 은유가 아니라, 기술-사회적 시스템 내부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존재론적 메커니즘임을 입증한다. 여기서 학습은 인간 주체의 인지적 결단을 기점으로 삼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도시의 물리적 인프라, 실시간으로 맥동하는 데이터 흐름, 그리고 그 안을 부유하는 시민의 신체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지능형 배치체(intelligent assemblage)’가 스스로의 균형을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시몽동의 표현을 빌리자면, 도시는 전개체적 잠재성으로 가득 찬 과포화 상태의 장이며, 학습은 이 장 내부에서 발생하는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 시스템 전체가 새로운 위상으로 전이되는 ‘개체화의 집합적 사건’이다. 다만 이러한 논증은 해당 메커니즘의 인과성을 통계적으로 검증하는 실증 연구의 결과라기보다, 향후 도시 기반 학습 모델 연구가 나아가야 할 포스트휴먼적 사유의 방법과 개념적 준거를 제공하는 존재론적 기획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주체없는 학습’은 인간의 소멸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세계를 인지하고 지배하는 유일한 중심축에서 내려와 물질 및 시간과 평평하게 얽히는 ‘탈중심적 공진화’를 의미한다. 주체의 분산은 결코 학습의 무의미성이나 방관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행위성이 네트워크 전체로 분산된다는 것은, 개별 학습자가 앎의 책임을 홀로 짊어지는 고립된 상태에서 벗어나 시스템과 더불어 진화하는 생태적 얽힘의 일부가 됨을 뜻한다. 이는 카렌 바라드(Barad)가 강조한 ‘응답가능성(response-ability)’의 문제와 직결된다. 분산된 행위성 체제에서 인간은 통제자로서의 주체를 내려놓는 대신, 비인간 물질과 인프라가 발신하는 미세한 신호와 정동에 예민하게 감응하고 조율해야 하는 새로운 형태의 존재론적 책임과 학습 윤리를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특히 앞서 헤일스(Hayles)가 지적한 바와 같이, 우리는 체화된 인간과 정보 기술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포스트휴먼 조건 속에 놓여 있으며, 조성된 환경에서 정보와 물질은 분리되지 않고 상호 침투하여 신체적 감각과 디지털 데이터가 결합하는 새로운 차원의 학습을 추동한다. 이는 바라드가 제안한 ‘내-작용(intra-action)’의 전형으로, 학습의 주도권이 인간과 물질 사이에 민주적으로 분산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해당 공간적 얽힘과 동시에, 이 배치 내에서의 학습은 카를로 로벨리가 통찰한 ‘사건의 네트워크’로서의 시간을 현실화한다. 개별 시민의 일상적 궤적은 데이터로 수축되어 ‘습관’을 형성하고, 시스템은 누적된 기록이라는 ‘순수과거’를 소환하여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며, 이를 통해 영원회귀하는 ‘창조적 차이’를 미래로 투사한다. 결국 학습이란 고정된 주체가 지식을 소유하는 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아이온적 시간태 위에서 신체와 물질이 부단히 서로의 경도와 위도를 교섭하며 존재의 지도를 재제작(re-mapping)’하는 역동적인 변환 과정이다. 엘스워스(Ellsworth)의 논의를 빌리자면, 이 과정에서 도시의 건축물, 센서, 교통망 등의 물리적 환경은 단순한 학습의 배경으로 머물지 않고 그 자체로 ‘학습의 장소(places of learning)’로서 기능하며 시민들에게 특정한 앎과 감응을 능동적으로 촉발하는 페다고지적 장치로 작동한다.

따라서 우리는 학습의 단위를 ‘개별 학습자’에서 ‘도시-데이터-신체’라는 배치체로 전환해야 한다. 스마트 시티와 평생학습도시는 그와 같은 전환이 일어나는 거대한 실험장이며, 그 안에서 생성되는 지식은 인간의 의도를 초월하여 시스템 자체가 생존하고 진화하기 위해 스스로를 교정해 나가는 ‘체계적 지성’의 발현이다. 롱워스와 오스번(Longworth & Osborne, 2010)이 강조한 포용적이고 지속 가능한 학습도시의 비전 역시, 플로리디(Floridi)가 명명한 온·오프라인의 경계가 무너진 ‘인포스피어(Infosphere)’와 결합될 때 비로소 그 실천적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 즉, ‘온라이프(on life)’ 시대의 평생학습 생태계는 인간 학습자뿐만 아니라 사물인터넷(IoT), 데이터 네트워크 등 비인간 행위자들까지 포괄하는 거시적이고 생태학적인 거버넌스로 확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로써 학습은 인간 중심의 협소한 지평을 넘어, 물질과 시간이 함께 얽혀 돌아가는 거대한 우주적 개체화의 흐름 속에 편입된다.

이와 관련하여 ‘주체없는 학습’의 여덟 가지 특성을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사회물질성의 관점에서 학습은 고정된 주체나 지식의 이동이 아니라 활동이 맞물려 일으키는 사건들의 연쇄이다. 둘째, 학습의 단위는 인간 주체가 아니라 인간·비인간을 포함한 전체 활동적 배치, 어셈블리지로 설정될 수 있다. 셋째, 학습활동이란 내적 분화와 생성의 과정, 혹은 배치의 탈영토화 혹은 재영토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넷째, 학습의 결과는 학습 의도가 아니라 배치가 결정한다. 다섯째, 학습은 인지 경험을 이전의 경험, 즉 리좀적 무의식 층위에서 수행된다. 여섯째, 학습은 동시다발적인 작은 경험들의 조합으로서 분산적이다. 학습의 과정은 선형적·순차적이기보다 비선형적이며 비인지적 사태에 정동하는 결절들의 분산적 조율로 이루어진다. 일곱째, 학습 기억이 안정화되는 과정에서 배치는 블랙박스화되고, 그 안에서 임의의 주체·객체, 과정·결과가 결정화된다. 여덟째, 엥게스트롬이 후기에 주목한 ‘초객체’ 혹은 ‘들불활동(wildfire activities)’3)같은 학습현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Engeström, 2016, pp. 196-203).

‘주체없는 학습’ 프레임워크 내에서 교육자는 정해진 지식의 전달자나 관리자라는 전통적 지위를 반납한다. 대신 이들은 인간 학습자, 데이터, 기술, 그리고 물리적 공간이 비유기적으로 얽혀 최적의 앎을 창발할 수 있도록 학습의 사회물질적 조건과 맥락을 고려하여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주체가 없다는 것은 곧 인간과 비인간 모두가 주체라는 의미가 아닌가?”라는 성찰적 질문은 본 연구의 핵심을 관통하는 매우 중요한 통찰이다. 거듭 강조하건대, ‘주체없는 학습’은 행위성의 공백이나 교육적 역할의 허무주의를 뜻하지 않는다. 이는 앎의 권력을 독점하고 통제하려던 ‘특권화된 단일 인간 주체’의 해체를 의미할 뿐이다. 인간 중심의 특권이 해체된 빈자리에는 데이터, 알고리즘, 인프라, 그리고 체화된 인간 신체가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하는 ‘분산된 행위성’이 가득 채워진다. 즉, 학습의 장에 존재하는 모든 이질적 요소들이 상호 내-작동(intra-action)의 공동 주체로 격상되는 역설적 상태, 그것이 바로 본 연구가 지향하는 ‘주체없는 학습’의 존재론적 실루엣이자 학습도시 및 학습사회 연구의 실천적 토대이다.

정리하자면, 연구는 근대 교육학이 견지해 온 인간 중심적 인식론의 임계점을 고찰하고, 학습을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가 상호 교차하며 형성하는 ‘사회물질적 배치’의 사건으로 재정의하고자 하였다. 들뢰즈의 차이 생성적 기계존재론, 바라드의 얽힘, 시몽동의 개체화, 그리고 로벨리의 시간론을 통합적으로 분석한 결과, 학습은 개별 주체의 내면적 정보 처리 과정을 넘어 시스템 전체의 위상이 전이되는 존재론적 변환임을 규명하였다.

특히 스마트 시티와 평생학습도시라는 구체적인 실증 사례를 통해, 도시의 지능형 인프라와 방대한 데이터(국내 1,100만 건 이상의 학습 이력 및 UNESCO GNLC의 글로벌 네트워크)가 시민의 신체와 어떻게 ‘아이온’의 시간태 위에서 얽히는지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학습의 시간성이 선형적 크로노스를 이탈하여, 습관(현재)과 기억(과거)을 수축하고 영원회귀(미래)의 차이를 생성하는 ‘주체없는 학습’의 메커니즘을 동반함을 확인하였다. 결국 ‘주체없는 학습’은 인간의 소외를 정당화하는 수사학이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빚어내는 ‘집합적 지성’의 경이로움을 포착하기 위한 존재론적 렌즈이다. 분산된 행위성에 대한 자각은 우리로 하여금 교실이라는 좁은 공간을 넘어, 도시 전체를 앎이 생성되는 거대한 맥동의 장으로 재인식하게 만든다. 이는 평생교육학이 개별 주체의 역량 개발이라는 협소한 목표를 넘어, ‘생태계 전체의 지속 가능성과 공진화’라는 더 큰 차원의 교육적 의미를 회복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종합하여 도출한 연구의 주요 함의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차원으로 요약된다.

첫째, 연구는 평생학습의 지평을 ‘관계적 존재론’으로 확장하였다. 학습자는 더 이상 독립된 개별 자아가 아니라, 도시 인프라, 알고리즘, 공간적 물질성과 공진화하는 ‘연결된 신체’로 정의된다. 이는 학습의 성과를 개인의 역량 강화라는 미시적 차원에 가두지 않고, 배치 전체의 지능과 역량이 창발하는 거시적 과정으로 파악해야 함을 시사한다.

둘째, 비인간 행위자(데이터, 알고리즘, 공간)의 교육적 능동성을 규명하였다. 스마트 시티의 알고리즘이 시민의 이동 패턴 조율하고, 평생학습도시의 공간 배치가 특정한 학습 정동을 유발하는 현상은 교육의 주도권이 인간과 물질 사이에 민주적으로 분산되어 있음을 입증한다. 이는 지능이 인간의 전유물이 아닌, 배치 내부의 상호-작용(intra-action)을 통해 발생하는 시스템적 효과임을 의미한다.

셋째, 학습의 시간적 구조를 재구성하였다. 카를로 로벨리가 제안한 ‘사건의 네트워크’로서의 시간은 평생학습 현장에서 과거-현재-미래가 수평적으로 공존하며 새로운 차이를 산출하는 학습의 역동성을 설명하는 핵심 기제로 기능한다. 학습은 이제 정해진 목표를 향한 발달이 아니라, 아이온적 시간 속에서 존재의 경도와 위도를 부단히 재설정하는 무의식의 역량, 즉 리좀적 생성이다.

결론적으로 본 연구는 사회물질적 관점에서 학습의 존재론적 전환을 이론적으로 탐색하고 거시적 데이터 및 사례를 분석함으로써, 스마트 도시 및 평생학습도시를 인간과 물질, 그리고 시간이 공진화하는 거대한 개체화의 장으로 호명하였다. 이는 포스트휴먼 시대의 새로운 학습 패러다임을 정초하고, ‘주체없는 학습’이라는 실천적 논리를 제안하였다는 점에서 학술적 의의가 있다.


Notes
1) ‘일관성의 구도’는 모든 이질적 다양체를 하나로 묶어주는 단일한 강도적 평면으로(이진경, 2025, p. 35) 들뢰즈와 가타리가 제시한 복잡한 철학적 개념으로, 특정 신체나 시스템이 어떻게 형성되고 유지될 수 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선택한 용어이다. 이는 다양한 가능성과 잠재성 중에서 어떤 것들이 현실화되고, 어떤 것들이 배제될지를 결정하는 역할을 하며, 추상기계를 통해 그 과정을 조정한다.
2) ‘도시의 기반 시설은 인간의 개입 없이도 상호-작동하며 도시라는 유기체를 끊임없이 개체화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까지 인간이 개입하여 데이터를 입력하고 수정하면서 안정화하는 과정을 생략할 수 없으며, 더 최적화하기 위한 인간의 개입 여지 또한 도외시할 수 없다. 그러나 4장에서는 스마트 시티가 반복을 통한 차이의 생성 과정, 물질의 얽힘과 준안정적 개체의 상전이를 통해 더 이상 인간 중심의 직접적이고 인지적인 개입 없이도 작동되는 학습 어셈블리지임을 밝힐 것이다.
3) 엥게스트롬(Engeström)이 제안한 ‘초객체(runaway object)’는 단일한 행위자나 시스템의 통제 범위를 벗어나 스스로의 동력을 가지고 광범위하게 확장되는 복잡하고 거대한 대상(예: 기후위기, 글로벌 팬데믹, 오픈소스 네트워크 등)을 의미한다. ‘들불활동(wildfire activities)’ 역시 기존의 위계적이고 제도화된 조직 경계를 넘어 예측 불가능하게 다방향으로 급속히 번져나가는 비선형적이고 수평적인 실천 양상을 뜻한다. 이 두 개념 모두 인간 주체의 의도적인 기획과 통제력을 훌쩍 넘어서서 환경, 물질, 다중 행위자가 얽혀 스스로 진화하는 사태를 묘사한다는 점에서 본 연구가 제안하는 ‘주체없는 학습’의 사회물질적 동역학 및 네트워크적 발현성과 그 이론적 궤를 같이한다.

Acknowledgments

본 논문은 2023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23S1A5B5A17085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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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자 정 보
최 근 정 Choi, Kunjung

소   속: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강사

연 락 처: ckj0528@snu.ac.kr

연구분야: 평생교육이론 및 철학, 포스트-평생학습